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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과 방조제를 대대적으로 보수해야 한다. 현 상태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나 우선 경제 살리기가 중요하니 시급한 곳만 점진적으로 보수하고 나머지는 성장에 투자하자.” 너무 익숙해서 한국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1930~1940년대 네덜란드 이야기다. 그때까지 이 나라는 우리와 아주 닮아 있었다. 그러다가 1953년 북해 대홍수가 발생한다. 국토의 90%가 바다보다 낮거나 혹은 해발 1m 미만인 이 나라에서 북해 대홍수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한국과의 닮은꼴은 여기서 끝난다. 네덜란드는 북해 대홍수 발생 후 한 달 만에 델타위원회를 구성하고 안전을 중심으로 국토를 다시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바닷물에 맞서 싸우는 이 작업은 1997년까지 무려 44년간 지속됐다. 하천의 범람을 막는 2단계 사업이 시작되었고, 2008년부터는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는 사업으로 오늘까지도 진행 중이다. 재난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62년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일 대통령이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한 데 이어 유승민 원내대표도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해야 한다고 한 것을 보면 인양 여부를 둘러싼 논란의 가닥은 어느 정도 잡혀가는 모양새다. 여론조사 결과도 호의적이다. 그동안 인양에 반대해온 사람들은 비용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제는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그 일상은 세월호와 같은 재난이 곳곳에 도사린 곳이다. 북해 대홍수로 네덜란드에서는 1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 후 그들이 비용 때문에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을 것이다. 세월호를 인양하고 나면 우리는 잊을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이제 인양까지 했으니 뭘 더 바라느냐, 이제야말로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할 것이다.

인양은 많은 비용을 수반하기도 하려니와 희생자 가족은 물론 전 국민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헤집는 고통도 동반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인양해야 하는 이유는 희생자 가족의 상처를 달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세월호를 낳고 있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과감히 고쳐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이 약속했던 국가 대개조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재난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드러낼 용기를 가져야 재난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세월호라는 사건 하나에만 국한하지 말고 비슷한 재난들을 가져오는 근본 원인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드러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택이 된다. 권한과 자원을 나눠 가진 조직과 사람에 맞서 싸워야 하고, 자칫 정권의 무능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드러내기보다는 책임자 찾기로 돌아서게 된다. 세월호의 경험이 그랬다. 국가 대개조를 말할 때만 해도 드러내기의 길로 가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유병언과 그의 아들이라는 책임자 찾기로 돌변해 있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유병언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과거에도 그렇지 않았던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구속되기도 했지만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반복되어왔다. 이제는 책임자 찾기에 그치지 말고 드러내기를 해야 할 때다.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진실과 안전사회를 위한 사회원로 단체 회원 등이 지난달 입법예고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_ 연합뉴스


세월호 1주기를 맞는 지금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추모는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뿐 아니라 수십년 동안 비슷한 종류의 재난과 희생을 반복하게 만든 부패와 유착, 위험에 대한 둔감성을 모두 드러내고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철저하고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안전은 일종의 공공재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안전을 혼자 만들어낼 수는 없다. 따라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모두가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하다면 언제 그 위험이 내게 돌아올지 알 수 없다. 희생자와 일반인을 구분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어떤 이는 세월호 인양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한다. 비용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인양이 세월호만으로 끝나지 않고 위험과 안전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 비용은 가장 값어치 있게 쓰이는 셈이 될 것이다. 보상조차 인양 후로 미뤄달라는 희생자 가족들의 참뜻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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