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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부의 대입제도 개편안 발표로 대통령의 교육공약 이행은 어렵게 되었다. ‘창의적 사고력과 표현력을 평가하기 위한 논·서술형 수능 도입’에 대한 답은 아예 없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교육 관련 공약 중 초·중등교육에서의 민주시민교육 확대 한 가지만이 유일한 희망인 것 같다. 대통령 취임 1년2개월이 지나고 있다. 이번에도 청와대가 좌고우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은 건국 이래로 적어도 명목적으로는 포기되거나 중단된 적이 없는 교육 목표였다. 이승만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까지는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으로 반공교육을 했고, 김대중 정권 이후 지난 박근혜 정권까지는 교육과정의 수많은 범교과학습 주제 중 한 가지로 취급되었다. 다시 말해 교육부가 교육법이나 교육기본법에 규정된 중요한 교육 목표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 만에 교육부에 의해 ‘민주시민교육’을 교육기본법에 의한 국가의 교육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 시도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주관적 행복지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관계 지향성’과 ‘사회적 협력’ 부문의 점수가 모두 최하위다. ‘더불어 사는 능력’ ‘정부를 신뢰’하는 학생의 비율, ‘학교를 믿는다’는 학생의 비율도 바닥이다. ‘정당에 대한 믿음’은 18%, ‘학교와 미디어에 대한 믿음’은 각각 45%와 51%이며, ‘공공기관에 대한 청소년들의 신뢰도’는 최하위 수준이다. ‘총체적 불만자’ 유형이 25.2%로 조사 대상국 평균(13.8%)의 약 2배로 나타났다. 작년과 올해 연이어 나타나는 청소년들의 폭력은 해가 갈수록 끔찍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처벌 위주의 대책 마련에만 집중하고 있다.

청소년들만 이런 상황일까? 법원이 정의를 부정하고, 군대가 국민의 안전을 부정하고, 공정위가 공정성을 부정하고, 국회가 민의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한 엘리트들의 집단이기주의와 공적 책임의식의 부재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국가 기관의 단순한 부패가 아니라, 전면적 자기부정이다.

유럽의 국가들 대부분은 학교 시민교육을 과목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1985년부터 학교 시민교육을, 독일은 1970년대부터 정치교양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늦었다는 영국조차도 2002년부터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중등교육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적용했다.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이 ‘시민’으로 인정받으면서 어른의 ‘동료·동반자’로 그 사회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유치원부터 끊임없이 고민하게 한다. 자율, 존중, 연대를 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 어린이·청소년들은 시민인가? 지난해 촛불을 들 때만 동료, 동반자였나? 어린 시민들은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해결책을 토론하기에는 아직도 미성숙한가? 그들이 학교에서 공적인 문제에 대해 정기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고 연대하면 불편한가? 학문을 중심으로 한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잘 부탁한다고 하면 해결될 일일까? 모든 교사의 책임이라는 말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 아닐까? 프랑스·독일·영국 등에서 학문 중심의 기존 교과들이 민주시민교육의 요소를 잘 반영(필요조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교육 과목(충분조건)을 갖춘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경우 과목 설치를 결심하고 준비하여 학교에 정착됨으로써 청소년 범죄를 현저히 낮추는 데까지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영국 사례를 보면 우리는 지금 준비해도 학교 시민교육의 효과는 약 10년 지나야 나타날 것이다. 국가교육의 목적인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적폐를 더 이상 쌓지 말자. 문재인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답해야 한다.

<김원태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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