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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문학의 오래된 소재이다. 누군가가 떠날 때 아쉬움에 술을 마시고, 격려와 당부의 말을 건넨다. 차마 못한 말을 글로 적으면 시가 된다. 고려 시인 정지상은 ‘송인(送人)’에서 “대동강 저 물결은 언제나 마를 건가/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해주니”라고 헤어짐을 노래했다. 이별시의 절창이다. 김소월은 ‘진달래꽃’에서 헤어짐을 앞에 두고서 꽃을 뿌리겠노라고 말한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역설의 시다.

추석계기 남북이산가족 2차상봉 마지막 날인 5일 마지막 상봉을 마치고 버스에 오른 남측 왕소군(81) 할머니가 북측 여동생들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가장 슬픈 이별은 가족과 헤어지는 일이다.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외직을 떠돌던 소동파는 추석날, 술에 대취해 동생 소철을 떠올린다. 떠오른 보름달에 동생의 얼굴을 겹쳐 보면서 “달에게 그 무슨 이별의 한(恨) 있으랴만/ 어찌하여 늘 이별해 있을 때만 둥근가”(‘수조가두’)라고 달을 원망한다.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한날한시에 나란히 남도의 유배지로 떠난다. 나주 율정점의 삼거리 주막거리에 이르렀을 두 사람은 이별과 맞닥뜨렸다. 형은 신안으로, 동생은 강진으로 가야 한다.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에서 동생 정약용은 오열한다. “초가 주점 새벽 등불 깜박깜박 꺼지려 하는데/ 일어나서 샛별보니 아! 이제는 이별인가/(…)/ 흑산도 머나먼 곳 바다와 하늘뿐인데/ 형님이 어찌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율정에서의 이별’)

26일 끝난 금강산 이산가족 2차상봉에서도 그리움에 사무친 이별시가 쓰여졌다. 남측의 오세영 시인(서울대 명예교수)은 북측의 사촌동생을 만나 어릴 적 함께 놀던 기억이 떠올라 시를 지었다. “그때 그날처럼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외갓집 마당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다시 만나자.”(시 ‘사랑하는 동생 종주야’) 북측 상봉단에도 시인이 있었다. 남측의 언니, 동생들과 만난 북측 량차옥 시인은 자매들 앞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지었다는 자작시를 들려줬다. “우리 집에 코스모스/ 담장 밑에 코스모스/ 빨간꽃은 피었는데/ 우리 엄마 어데가고/ 너만 홀로 피었느냐/ 너만 보면 엄마생각/ 너만 보면 고향생각.”(시 ‘우리집에 코스모스’) 둘 다 이별시이지만, 동생을 남기고 온 오 시인의 시는 유별시(留別詩)이고, 자매를 다시 남으로 보낸 량 시인의 시는 송별시(送別詩)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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