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세 살 난 아들과 함께 집에 있던 상준은 문득 낯선 신호음이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지만 상준과 가족은 약 50종의 크고 작은 전자제품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신호음이나 경고음을 내는 기기는 자동차를 제외해도 40종이 넘었다. 상준은 낯선 신호음을 내는 기계를 직접 찾지 못하고 결국 스마트홈 앱을 실행시켜보았다.

경고음을 내는 기계는 아들 준영이의 건강 상태를 늘 점검하는 ‘아이지킴이’였다. 준영이의 목에 목걸이처럼 걸린 지킴이는 빨간 LED를 깜빡거리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상준이 아들에게 물었다.

“준영아, 어디 아파?”

준영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그리고 아직 어눌한 “아니, 안 아파”라는 대답이 뒤를 따랐다.

상준은 조금 마음을 놓으면서 스마트홈 앱을 다시 띄우고 아이지킴이를 선택했다.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 진단’ 항목을 누르자 시커먼 느낌표가 튀어나왔다.

‘서버와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에러 코드 699.’

상준은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는 다른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홈이 전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으므로 문제는 어디까지 아이지킴이 자체에 있었다. 상준은 앱을 몇 번 재실행하면서 아들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아들은 조금도 거북하지 않은 모습으로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상준은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인터넷을 뒤져 아이지킴이 사용팁을 검색해보았다.

‘아이지킴이 에러 699 간단해결법.’

상준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인터넷 글을 찾았다. 한때 아이지킴이 제조사의 직원이었다는 사람이 이곳저곳에 남긴 글이었다. 작성자에 따르면 사실 에러 699는 서버 연결과 관계가 없고, 제조사가 네트워크 연결에 책임을 돌리려고 마련해둔 가짜 경고라고 했다.

작성자는 집에서 손쉽게 고칠 수 있는 방법까지 안내하고 있었다. 상준은 아이지킴이의 고정장치를 풀고 작성자가 만들어놓은 시연 동영상을 따라 순서대로 분해했다.

“아빠, 목이 간지러워.”

“이걸 벗기니까 어색해서 그래. 조금만 참아. 아빠가 고쳐줄게.”

상준은 가느다란 아이지킴이를 반으로 나누어 열고 빨간 전선과 가느다란 콘덴서를 찾아냈다. 콘덴서 아래에는 더 작은 접점들이 늘어서 있다. 동영상에 따르면 접점 가운데 한 쌍을 강제로 분리하기만 하면 앞으로 다시 699번 에러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상준이 동영상 시연을 정확히 따르고 아이지킴이를 재조립하는데 갑자기 준영이가 헐떡거렸다.

“아빠, 가슴이 답답해.”

상준이 손본 지킴이는 아무 경고음도 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리둥절했지만 아들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만큼의 분별력은 남아 있었다.

한 시간 뒤 응급실 의사들은 준영이의 증상을 신속하게 해결해주었다. 준영이는 초미세먼지 알레르기 때문에 비강에 박막필터를 끼고 있었고, 지킴이가 처음에 보낸 경고는 필터 손상 때문에 발생했다. 제조사에서 근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동영상은 완전히 엉터리였다. 에러 699는 정말로 아이지킴이 서버가 응답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였다.

상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응급실 출구에서 손을 끌어당기며 장난치는 아들을 보면서, 근거 하나 없이 낯선 이의 가짜 동영상에 아들 목숨을 걸었던 어리석음을 속으로 한 번 더 질책했다.

‘폭스밋베어’는 팔로어가 13만2000명인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이 계정에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사진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사진은 거의 대부분 전원생활을 누리는 한 가족의 모습이다. 이 가족은 한결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숲속에 살고, 직접 채집한 자연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적어도 사진만 보자면 그렇다.

계정 주인은 숲에서 직접 채집한 음식재료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는 책을 출간했다. 책이 아마존에 모습을 드러내자 5점 만점에 1점짜리 평점이 쌓이기 시작했다. 저자가 날로 먹어보라고 권하는 야생 버섯이 실은 그리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검증하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이 담겨서 위험했기 때문에 출판사는 결국 문제의 책을 전부 회수했다. 하지만 아마존 사용자 다수가 항의한 다음에야 회수한 것으로 볼 때, 결국 독자의 건강을 지켜낸 건 출판사가 아니라 독자들 자신이었다.

우리는 차고 넘치는 인터넷 자원에 힘입어 아주 많은 정보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가 많고 신속하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정보의 질이나 진위를 보장하진 않는다. 아무리 팔로어와 ‘좋아요’가 많아도 그 사람들이 내 배 속에 들어가버린 유해물질을 해독해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이 전부 언급하고 동의한다고 해서 가짜뉴스가 진짜로 변하지도 않는다. 가짜뉴스와 유해한 정보를 안일하게 받아들이면 결국 그 독소는 뇌까지 스며들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고통을 심고 말 것이다.

이 시대에, 일상생활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과학적인 의심과 합리적인 검토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김창규 SF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