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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벨기에의 아스트리드 공주는 258명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방한했다. 당시 경제사절단에는 110개 벨기에 기업이 참여했다. 이후 한국과 벨기에 간 교역은 2년 연속 연간 16~17% 성장했다. 2년 만에 필립 국왕이 동생에 이어 180여명과 함께 다시 방한한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벨기에의 국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는 않는다. 벨기에는 3개 언어권과 3개 지역권 등으로 나뉘어져 있어 많은 타협과 조정이 필요했다. 인구 1100만명에 남한의 30%인 국토면적을 가졌지만 연방제를 채택한 것도 지방분권의 결과이다.

한·벨기에 협력은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건설, 초콜릿과 맥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 건설에 양국 기업이 협력했다. 국왕을 수행하는 90여명의 벨기에 기업 총수들은 양국 간 협력을 더욱 넓힐 것이다.

벨기에는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다. 6·25전쟁 당시 연 3500명을 파병했다. 우리가 금융위기를 겪을 때인 1998년엔 유럽 국가로는 처음으로 투자조사단을 파견했다. 작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벨기에는 1936년 이래 최대의 대표단을 보냈다. 수교 역사도 118년에 이른다. 대한제국은 1901년 3월23일 벨기에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고종 황제는 벨기에와 같이 중립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벨기에 외교관은 고종 황제의 개인고문으로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주일 벨기에 공사는 일본의 통치기간 누적된 실망과 불만에서 발단되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벨기에 외교문서가 필립 국왕의 문희상 국회의장 면담을 계기로 소개될 예정이다.

벨기에는 오드리 헵번, 장 클로드 반담의 나라이며 우리가 즐기는 초콜릿의 생산국이다. 벨기에 과학자가 발명한 플라스틱은 우리 주변에 있다. 벨기에 신부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치즈가 처음 생산되었다. 필립 국왕이 방문할 예정인 전진상의원에서 보듯 벨기에인들은 한국인을 위해 많은 봉사활동을 했다.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자는 늘 두각을 나타낸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부른 황수미 성악가는 2014년 1위 수상자이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에는 작년 6만3000명의 방문객을 맞았다. 벨기에가 처음 외국에 대학 캠퍼스를 연 것은 2014년 겐트대학교 인천송도 글로벌 캠퍼스이다. 유럽 최초의 한국 석좌는 2017년 브뤼셀 자유대학에 설치되었다. 이번에 16명의 벨기에 대학 총장 등이 함께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벨기에는 유럽의 전쟁터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전쟁을 겪었다. 이는 벨기에가 국제협력과 타협을 적극 추진해온 배경이다. 국내는 물론 유럽연합, 나토를 통해 타협과 조정을 이루어온 벨기에의 경험은 한반도 화해와 통합과정, 동북아시아 협력과정에서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김형진 | 주벨기에 EU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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