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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께.

지난 8월29일 국무회의에서 “홀트아동재단(복지회) 등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입양해주는 해외기관에 정기적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입양제도 개선을 위해 일했던 사람으로서, 사석도 아닌 국무회의에서 하신 말씀을 접한 뒤 참담함을 금할 수 없어 이 글을 씁니다.

총리께서는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를 주자고 하셨습니다. 그럴 만한 일이면 마땅히 그래야지요. 지난해 해외입양된 아이는 334명. 예전보다 줄긴 했으나 저출산을 걱정하는 판국에 하루 한 명꼴로 해외입양을 보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장 오래 해외입양을 보내왔고, 지금도 OECD 회원국 중 해외입양을 보내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GDP 규모 세계 12위인 나라에서 친생부모가 버린 아이들 300여명을 사회가 거두지 못해 여태 해외로 보냅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게다가 ‘입양해주는 기관’에 감사하자고 하셨지요. 국가가 아닌 민간기관이 입양을 맡는 게 한국 입양제도의 가장 큰 문제인데, 여기에 감사하자고 하시니 아연할 뿐입니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최종 단계에서 법원이 허가하는 모양을 갖추었으나 여전히 입양 절차의 시작은 민간기관에 맡겨져 있습니다. 한국이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채택을 유보해 여태 국제사회에서 비판받는 항목이 있습니다. 입양 과정을 공공기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21조 (a)항입니다. 입양을 보내면서 이 조항 채택을 유보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입니다. 해외입양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헤이그 국제아동협약에도 한국은 아직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정부가 책임지지 않아 팔려가듯 해외로 입양 간 아이들은 종종 생사의 위기에 놓입니다. 2014년 초 세 살배기 입양아 현수를 폭행해 숨지게 한 미국인 양아버지는 심한 정신적 장애가 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국 국내입양이었더라면 기준 미달로 허가받지 못했겠지만 해외에서 온 현수에겐 다른 기준이 적용된 것이죠. 그뿐 아닙니다. 가정법원이 입양허가를 시작하기 이전에 미국에 입양된 한국 아이들은 입양부모가 따로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지 않으면 무국적 상태에 놓였습니다. 한국 정부도 해외입양을 보내는 순간 자동으로 아이들의 국적을 박탈했습니다. 입양이 민간기관들 사이에서 이뤄지다보니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죠. 그렇게 무국적자가 된 해외입양인 2만여명 중 한 명인 김상필씨는 한국에 돌아와 자신에 대한 기록을 찾다 실패하자 지난 5월 결국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흔히들 해외입양이 6·25 직후 전쟁고아를 대상으로 했다고 생각하지만, 해외입양은 한국 경제 초고속 성장기인 1980년대에 가장 많았습니다. 그 대다수는 미혼모의 아이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입양된 아이들의 92%는 미혼모의 자녀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결혼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면 입양을 통해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족을 찾아주는 게 더 좋다는 인식, 즉 강력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그 혐의를 둡니다. 정상가족의 순수함을 훼손했다고 여겨지는 미혼모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찍어온 탓에 지금까지 그 많은 미혼모 자녀들의 해외입양이 진행됐던 것이지요.

미혼모 자녀를 입양으로 몰아가던 관행은 과거 서구 사회에서도 있었습니다. 2013년 호주 정부는 무지막지한 입양으로 “어머니에게서 아이를 분리하도록 강요했던 정책과 관행들이 그들에게 평생 고통을 남긴 것”에 대해 공개 사과했습니다. 한국에선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미혼모와 해외입양인들의 오래된 고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부끄러운 역사인 해외입양은 중단돼야 합니다. 정부가 우려하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라도 미혼모에 대한 차별을 걷어내고 가족의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국내입양에서도 입양 절차의 시작부터 끝, 그 이후까지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입양과 관련하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감사’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사과와 마땅한 공적 책임을 지는 것임을 총리께서 다시 한번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김희경 인권정책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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