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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 번의 남북 정상의 만남, 그리고 북·미 정상의 만남을 본 우리 국민들은 이제 한반도의 비핵화, 나아가 남북 상생공영 발전의 새 시대가 열리겠구나 하는 큰 기대를 가졌었다. 그런데 이달 초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는 우리 기대와 달리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했다. ‘역시 북한은 믿을 상대가 못돼’ ‘북한은 그런 식으로 다루면 안돼’ 등 회의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정말 그럴까. 폼페이오와의 협상 결과에 대한 북한 측 반응의 행간을 잘 읽으면 이 난관의 해법이 보인다. 북한 언론은 폼페이오의 주장을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아마도 비핵화 시간표를 내놓아야 종전선언,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폼페이오의 주장, 즉 선 비핵화 요구에 대한 북한 측의 강한 반발인 것이다. 자신들이 수십년 공들였던 핵 억지력의 포기는 북한 정권의 확실한 안전 담보, 즉 정전체제의 평화체제화(평화협정 체결을 통한)와 북·미 수교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고 북한은 굳게 믿고 있다. 북한은 그러한 입장이 문서화된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에 큰 만족을 표시했다. 그런데 먼저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하니 이게 강도적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불만인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5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발언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의 목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까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루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AP연합뉴스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정상회담 이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북한 억류 미국인들의 석방,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 실행 등 나름대로 북·미 협상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했다고 할 것이다. 또 가장 최근에는 미군 유해 송환 약속도 실행에 옮겼다. 반면 미국은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평화협정 체결의 전단계인 종전선언을 주저할 뿐 아니라 북한을 옭죄여 온 대북 제재도 전혀 풀어주지 않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러한 태도가 강도 같은 행태로 보일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새로운 비밀 핵시설 의혹을 제기하는 미국에 대해 북·미 공동성명의 이행 의지가 정말 있는 것인지 강한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사실관계는 차치하고 확실한 근거도 없는 비밀 핵시설 의혹을 제기하는 미국 측의 행태는 분명 우리로서도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 생각된다. 최근 북한 노동신문의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잇따른 비난의 저의는 우리 정부의 적극적 노력의 부족함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문재인 정부는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평양 정상회담을 가져 종전선언과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을 발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평화협정 논의 시작과 함께 핵 신고서 제출, 신고서에 따른 핵사찰 검증과 북·미 수교 협상 진행, 대북 제재 완화 조치, 평화협정 체결과 핵시설 폐기, 대북 제재 해제 및 북·미 수교, 그리고 최종적으로 초대 평양 주재 미국대사가 주도한 북한 핵무기의 해외 반출이라는 비핵화 로드맵 정도라면 북한 측도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 중국과 사전에 협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그들의 허락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와 필요성을 강하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현상의 변화를 바란다면 깊은 통찰과 과감한 결단, 그리고 자신감이 필요하다. 특별히 북한이란 존재에 대한 인습적 편견과 불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의 내부 사정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 상황이 북한 비핵화와 남북 공동 경제발전을 추진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성원 | 동북아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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