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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선포와 이후 세세한 이행 방안을 담은 ‘대비계획 세부자료’가 공개되면서 국군기무사령부가 헌정중단을 기획한 내용과 증좌는 차고 넘친다. 계엄 포고문을 작성하고, 국회와 언론사를 장악하며, 심야에 광화문과 여의도에 장갑차를 진주시켜 시위를 진압하는 등 구체적 행동계획이 수립되었다. 야당 의원들을 검거해 계엄 해제 의결이 정족수에 미달하도록 만드는 국회 무력화 계획까지 짰고, 미국 정부 등으로부터 계엄 인정을 받기 위한 외교적 조치도 마련했다. 합동참모본부가 2년마다 재검토해 유지하는 ‘계엄실무편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방면에 걸쳐 세밀하게 수립된 실행계획은 하나같이 군의 계엄 준비가 실행 직전 단계까지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계엄 실행 의도가 명백했음을 증명하는 세부자료까지 공개된 마당에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내란 음모로 보기에는 과도한 해석”이라며 “질 낮은 위기관리 매뉴얼”이라고 밝혔다. ‘계엄 문건’과 관련, 처음 나온 발언이다. 촛불집회 확산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군을 동원해 시민들을 진압하려는 계엄 획책을 ‘위기관리’ 정도로 치부하는 인식이 가공스럽다. 기무사 ‘계엄 문건’이 공개된 뒤에 줄곧 사태의 본질은 도외시한 채 ‘단순 대비 문건’ ‘시행 가능성 없는 문건’ 운운하며 음모론을 펼쳐온 한국당의 극우 의원들이 오버랩된다. 명백한 증거들에는 애써 눈을 감고, 총을 앞세워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유린하려 한 무도한 국가권력과 정치군인을 옹호하려 드니 ‘제2의 홍준표의 길을 가려는가’라는 힐난이 나오는 것이다. 극우·냉전 이데올로기에 갇혀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을 하고 북·미 정상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하는 상황에서도 ‘빨갱이 장사’ 외에는 할 게 없었던 ‘홍준표의 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것은 필연이었다.

진정한 보수정당이라면 군을 정치적으로 오염시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태에 앞서 분노하고 바로잡는 노력을 하는 것이 정상일 터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과 함께 ‘보수가치의 재정립’을 지상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보수가치의 재정립을 위해서도, 우선 군대까지 동원해 부당한 권력을 옹위하려던 낡아빠진 세력과 결별해야 한다. 자신과 당의 입지에 유불리만을 따져 ‘민주주의의 적들’과 정략적 동행을 고집한다면 한국당에도, 김 위원장에게도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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