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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이후 6일 만에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공식 브리핑도 아닌 외부 추모 행사에서, 무능했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부 인사에 대한 어떠한 언급조차 없는 공허한 사과였다. 참사에 제대로 된 책임을 지는 시작점이 될지,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에 그칠지는 대통령의 이후 행보에 달려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경찰의 ‘셀프 수사’를 선택했다. 이미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청이 합류한 합동수사본부가 해경의 구조 실패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전적이 있다. 경찰의 지휘권자들이 참사 이후에도 자리를 지키는 상황에서, 참사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가진 경찰을 진상규명의 주체로 신뢰하기란 불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사는 법률 바깥의 제도적, 구조적 문제를 단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부 당국은 ‘주최 없는 행사 법령 미비’라고 면책 가이드라인을 주장하고 있다. 과연 윤석열 정부의 ‘수사’가 이 가이드라인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9월, 사회적참사조사특별위원회(사참위)는 결과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대상 권고사항을 전달했다. 사참위 보고서가 나온 이후, 국무총리에게,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경찰청장에게 수차례 권고사항 이행을 주문했지만, 돌아온 것은 “살펴보겠다”는 무성의한 답변뿐이었다. 사회적 참사에 무감한 정부가 또 다른 사회적 참사를 낳은 것이다.

국민의 분노가 향하는 곳은 최일선에서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던 현장 공무원이 아니다. 거듭된 참사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적 원인을 짚어내지 못한 채, 안일하게 그리고 무능하게 현장을 지휘했던 정부 그 자체이다. 수사를 통해서는 일부 실무자만 꼬리 자르기 식으로 처벌받을 뿐, 사회적 참사를 예방하지 않은 정부에 진정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

진상규명은 ‘법률적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가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재난조사기구부터 바뀌어야 한다. 전문성과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가지며 정부 부처의 조사기구에 대한 지휘 권한이 보장된 중대재난조사기구가 전제되어야 국가에 대한 신뢰 역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부를 감시해야 할 책무를 지닌 국회의 독립적인 진상규명 노력도 필요하다. 국민의힘은 명분 없는 국정조사 거부를 철회해야 한다. 본회의 의결이 필요한 국정조사뿐만 아니라 상임위별로 청문회도 가능하다. 특히 행정안전위원회 등 이태원 참사에 책임을 지닌 정부 당국을 견제할 의무가 있는 상임위에서는 정쟁이 아닌 진상규명을 위한 협력이 절실하다.

윤 대통령은 국민들의 분노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참사 당시의 무능과 무책임뿐만이 아니었다. 참사 이후 철면피처럼 책임을 회피하며,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발언을 일삼은 고위공직자,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배려 없이 위로금 운운했던 모욕적인 조치, 참사를 ‘검수완박’ 정쟁으로 몰고 가려는 잔혹한 정치. 이 모든 일들 또한 오롯이 대통령의 책임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용혜인 국회의원·기본소득당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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