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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을 정부에서 결정한다. 해외에서는 전력시장이 민간에 개방되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으나,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실질적으로 한국전력의 독점적인 구조이며,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전력시장을 통제하고 있다. 

2021년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였지만, 이는 전기요금을 자동적으로 연료가격에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고 연료비 변화를 감안하여 분기별로 요금안을 정부에 제출하면 최종적으로는 정부가 판단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폭등하면서 전력의 생산원가가 대폭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기요금의 인상을 상당 기간 유보하였고, 그 결과로 우리는 한국전력의 창사 이래 최대 적자를 목도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다. 전기요금은 서민물가와 직결되어 있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에 비해 5.7% 상승하였다. 6·7월에는 1년 전보다 6% 이상 물가가 올랐으니 물가를 잡는 것은 정부의 최대 과제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전기요금까지 물가상승을 가중시키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물가를 이유로 전기요금을 정상화하지 않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론적으로 독점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독점기업이 경쟁시장에서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누릴 잉여의 상당부분을 취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적이 크다. 그래서 독점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방법으로 한계비용을 기준하여 가격을 설정하게 하거나 규모의 경제에 의해 독점시장이 된 경우에는 평균비용을 기준하여 가격을 설정하는 등의 수단이 거론된다. 이 모두가 독점기업이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향유하면서 소비자가 누려야 할 잉여를 과도하게 취득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시장은 독점기업이 과도한 이익을 누리기는커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회사채 발행도 여의치 못한 실정이다. 

극적으로 국제 연료가격이 대폭 낮아지지 않는 이상 정부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금부터라도 최소한 이윤을 보전할 수 있는 요금 수준에 도달하도록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느냐 혹은 최대한 지불할 비용을 뒤로 미루다가 한국전력의 재무상황이 최악에 이르게 된 후 한꺼번에 국비를 들여 지원할 것이냐의 선택이다. 전자는 비록 당장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만 그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다. 게다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전력수요관리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후자는 당장에는 대중의 부담과 불만을 피할 수 있겠지만 뒤에 가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가를 엄중히 치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팩트 체크를 하자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산업과 가정에 대한 전기요금 교차지원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IEA(국제에너지기구)의 국가별 전기요금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다소 낮은 편이지만 가정용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가정용 전기요금이 저렴한 OECD 회원국은 멕시코뿐이다. 지금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지나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동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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