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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의 전설적인 벤처투자가 존 도어(71)가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11억달러(약 1조4000억원)를 스탠퍼드대학에 기부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기금을 바탕으로 환경과 에너지 기술, 식량 안보 연구와 관련한 기존 학과들을 재편해 ‘스탠퍼드 도어 지속 가능 스쿨’(Stanford Doerr School of Sustainability)을 설립하였다. 도어는 2006년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 영화 <불편한 진실>을 딸과 함께 본 뒤 기후변화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당시 10대 후반이던 도어의 딸은 “아빠 세대가 이 문제를 일으켰으니 아빠가 고쳐놓는 게 좋겠다”고 했다는데 부성애와 학습력이 겸비된 실행력이 놀랍다.

학구파로 알려진 빌 게이츠는 지난 6월 이 학교를 방문하고 블로그에 방문록을 남겼다. 사람의 배설물에서 영양가 있는 원소들을 골라내는 연구실도 있을 정도로 연구 영역에 제한이 없었다며 즐거워했다. 또 기존 분절화된 전공과목과 달리 협력과 융합이 자연스러운 학위 취득 시스템이 창조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라 낙관했다. 알다시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 2050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앞으로 30년 동안 거의 모든 생산 방식, 활동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빌 게이츠는 이 혁신 과정에 환경운동가, 선출직 공무원, 비즈니스 리더, 시민 등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고 썼다. 어떤 ‘선출직 공무원’을 생각하며 웃음이 나오다 창피해졌다.  

한때 유행했던 ‘기업은 1류, 관료와 행정은 2류, 정치는 3류’라는 말의 시작은 일본이다. ‘기업과 국민은 1류, 정치는 3류, 정치가는 4류’라는 것이 버블경제 이후 일본인의 정치관이고, 특히 젊은이들의 정치혐오가 만연하였다. 여러 설명 할 것 없이 지금 우리가 딱 그 꼴이다. 세종대왕과 정조, 외환위기를 이겨낸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강희, 옹정, 건륭 황제를 포함해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까지 추앙받는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학습력이 아닐까. 천하의 황제까지 공부에 나서는 이유가 뭘까?

일단 배우는 자세는 겸손함이 기본이다. 스스로 모르는 것이 있다 생각해야 전문가를 찾아 배움을 구하는 것이겠다. 휘하에 만인을 거느린 지도자는 백성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 더 나은 통치 방안을 탐구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위 지도층 인사는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신가. 30년간 우리나라 정치인과 함께해온 정치평론가 박성민은 “정치는 고도의 전문 영역임에도 프로정치인 육성 시스템이 없다. 대학과 정당에서 키우지 않으면 별도의 리더십 스쿨에서 키워야 한다”고 했다. 마쓰시타 정경숙이나 오마에 겐이치의 일신숙처럼 우리도 기업가의 사재를 기반으로 한 ‘여시재’가 있고 미네르바 스쿨 같은 ‘태재대학’도 곧 생긴다 하니 기쁜 일이다. 환경재단도 NGO로는 드물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과정을 운영해왔다. 오는 25일, 재단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경복궁 옆 서촌, 조선시대 문인과 중인들이 시도 짓고 실학을 탐구했던 공간에 ‘에코 캠퍼스’를 세우기로 했다. 한때 호랑이가 활개치던 인왕산과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해온 북악산이 둘러싼 이곳에서 기후난제를 풀고 세상을 이롭게 할 영웅호걸을 배출해 보련다. 벽돌 하나로 기후재난 막을 수 있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연재 | 녹색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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