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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일, 8592시간, 51만5520분. 지난해 9월4일부터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택시노동자 김재주를 상징하는 숫자들입니다.

그는 비닐 한 장으로 추위를 버텼습니다. 110여년 만에 찾아온 폭염과 열대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스트레스와 운동제한 등으로 인한 위장장애로 소화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조건에도 고공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뭇잎이 붉게 물드는 두 번째 가을을 하늘 감옥에서 맞이하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전액관리제 쟁취”를 염원하는 그의 외침에 대한 우리들의 침묵이 너무 길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두 번째 굴뚝에 올랐습니다. 첫 번째는 노동조합 활동을 인정받기 위한 69일간의 고공농성이었습니다. 노조할 권리를 쟁취하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택시기사가 번 돈을 회사가 취합해 나누는 법인택시 전액관리제(월급제)가 도입되어 자신을 포함한 택시노동자의 삶이 개선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2016년 2월5일 노사정(전주시청, 전주시 21개 법인택시,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은 지난해 1월1일부터 월급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다시 하늘에 집을 짓고 살고자 했을 겁니다.

저도 철탑 고공농성을 두 번 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당해고에 맞서 싸웠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노동자 류기혁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해 하늘에 올랐지만 태풍 나비를 버티지 못하고 하루 만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불법파견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96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습니다. 답답함과 외로움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김재주도 겪었을 감정입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주셨고, 그 힘으로 문제 해결의 불씨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힘이 모인다면 택시 전액관리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전액관리제는 2000년 1월28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강행 규정인 전액관리제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고, 1년 이내에 3번의 시정명령을 받으면 면허 취소도 가능합니다. 그만큼 행정관청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전주시청은 노사정 합의 당사자로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다가 김재주의 고공농성 1년이 다가오자 2018년 8월2일 19개 택시사업주에게 전액관리제 위반으로 과태료를 청구했습니다. 상식적인 행정집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택시업주는 소송을 걸었고, 전주시는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추가적인 처분은 어렵다고 합니다. 어떠한 압박도 받지 않는 택시업주는 불법적인 사납금 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전액관리제 실시에 미온적인 전주시와 택시업주들은 김재주의 고공농성 중단을 압박합니다. “법을 지키라”는 소박한 요구마저 봉쇄하려 합니다. 김재주는 자신의 몸이 망가져도 이번만큼은 전액관리제가 시행될 때까지 고공농성을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이제 그의 고통을 우리가 함께 나눠야 합니다.

다음달 1일 오후 3시 전주시청 앞에서 전국의 노동자 시민들이 함께 “전액관리제 쟁취”를 택시노동자 김재주와 함께 외치려 합니다. 김재주가 하루라도 빨리 그리운 땅을 밟을 수 있게 많은 분들의 참여를 호소합니다.

<최병승 | 현대자동차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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