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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일행이 텅 빈 세종시 금남면 대평리 금남대평시장을 ‘민생탐방’하는 장면을 찍은 지난 4일 사진이었다. 금남대평시장은 2일과 7일 장이 서는 ‘5일장’이다. 대부분 상가는 이날 문을 닫았다. 사진 속 서 장관의 표정도 어색해보였다. 일부 상인들은 “우리 시장이 5일장인데 장이 없는 날 무슨 장을 보러 오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토부는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를 내고 “전통시장 상인들은 서 장관의 방문을 적극 환영했고 서 장관은 각종 행사 물품 구입 때 지역전통시장을 자주 이용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세종시 금남대평시장을 찾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출처 : 국토교통부)


추석 등 명절을 앞두고 행정부 수장들은 으레 전통시장이나 사회복지시설을 찾는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은 물론이고 주요 공공기관장과 부처 차관까지도 나선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현장 물가를 체감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진찍기 이상의 의미를 두기 어렵다. 행여 행사에 언론이 동행하지 않으면 부처 홍보팀은 발을 동동 구른다. 기자들에게 “(모양새를 위해) 한번 따라가주면 안되느냐”는 읍소까지 한다. 행사가 끝난 뒤 각 언론사에 “봉사활동을 했다” “대국민소통을 했다”는 내용의 대용량 사진파일과 보도자료를 보내야 비로소 민생탐방 일정이 끝난다.

명절을 앞두고 소외된 사람들이나 민생 현장을 챙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들을 챙기려 한다면 조용히 현장을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 주요 관계자들과 언론을 옆에 끼고 우르르 몰려가서는 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위(청와대)에서는 장차관이 현장에 많이 나가 사진을 찍어야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조선시대 왕들이 왜 내시 한 명만 대동한 채 평상복으로 저잣거리를 들어갔겠습니까.” 모 부처 대변인실 관계자의 자조(自嘲)가 머릿속에 남는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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