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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은 추석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길바닥과 광장에서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채 슬프고 잔인한 추석을 지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한 가지씩 올린 합동기림상이,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유족들과 같이하려는 시민들이 마련한 한가위상이 차려졌다. 진도 팽목항에는 아직껏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들을 애타게 부르는 추석 밥상이 놓였다. 세월호 참사 발생 146일, “추석까지 이렇게 보낼 줄 몰랐다”는 유족들의 호곡이 가슴 저린다. 생때같은 아들딸이 왜 그토록 속절없이 수장되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싶다는 바람이 이토록 무참히 외면당하고 꺾일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진상규명에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약속한 대통령, 앞다퉈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며 안전한 나라를 다짐한 여야 정치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올린 추석 메시지, 추석 당일 명절 인사에서도 세월호의 ‘세’자도 꺼내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은 고사하고 한데에서 ‘슬픈 추석’을 쇠는 유족들에 대해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아 상인을 격려하고, 태릉선수촌을 방문하고, 뮤지컬 공연을 관람한 박 대통령의 ‘민생 돌보기’에서 유독 세월호 유족만 제외한 것과 매한가지다. 박 대통령이 소원하는 “국민 행복”의 국민은 대체 어느 국민을 말하는 것인가. 세월호 유족들이야말로 지금 가장 먼저 만나고 보듬을 국민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3일 오후 새누리당과의 세월호특별법 관련 3차면담이 소득없이 결렬되자 국회 본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이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대통령이 답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풀지 않고는 국정도, 정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무책임에다 야당의 무능이 더해지면서 세월호특별법이 마냥 표류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특별법은 방기한 채 무조건 국회 정상화와 소위 민생법안 처리를 야당에 압박하고 있다. 세월호와 ‘민생’을 대립항에 놓고 의도적으로 사회 갈등을 조장해 탈출구를 마련하려는 속셈이라면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짓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자’는 세월호특별법의 목적에 충실한다면 길은 나 있다. 쟁점인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특검 추천권 문제의 매듭을 자르면 된다. 박 대통령이 “나를 포함해 청와대와 정부의 사건 관계자 모두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조사를 받겠다”고 진솔히 선언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유족들의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터이다. 새누리당이 세월호특별법의 문턱을 높여놓고 꿈쩍도 못하는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 ‘성역 보호’ 말고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만이 꽉 막힌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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