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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죄인입니까.”

지난 2일 경찰에 가로막힌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절규하듯 한 말이다. 이들은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지 135만여명분을 전달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하면서 청와대로 향하던 중이었다.

세월호 참사 144일째. 추석을 앞둔 세월호 가족들은 ‘거꾸로 선 세상’에 살고 있다. 국가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가족들이 단식과 농성과 삼보일배까지 하면서 호소해야 하는 세상. 사회적 위로와 공감과 치유의 말은커녕 “시체장사” “유가족충” 등 온갖 모욕의 말과 행동들을 견뎌야 하는 세상. 경제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죄인’이자, 일상 복귀를 바라는 ‘일반 국민’의 바람을 거스르는 ‘반(反)국민’으로, 사회적 ‘왕따’로 몰리고 있는 세상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면서 비통해했던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그때 300여명의 생명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눈뜨고 지켜보면서 했던 수많은 속죄와 다짐의 말들은 어디로 갔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월호’는 이 지경까지 됐을까.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 앞에 세월호 참사 실종자의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선선한 초가을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 143일째, 실종자 10명이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심판론’을 내세우는 것 외엔 아무런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야권의 지리멸렬은 논외로 하자. 넉 달 전 스스로를 ‘죄인’이라면서 “살려달라”고 읍소를 거듭했던 이들은 새누리당이었다. 최경환 당시 원내대표는 4월24일 “정말 죄인 된 심정”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도와주세요”라는 손팻말을 들거나,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며 아스팔트 위로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새누리당의 대응은 180도로 달라졌다. 7·30 재·보궐선거에서의 ‘11 대 4’ 압승을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명령”(이완구 원내대표)이라면서 면죄부처럼 흔들어댔다. 세월호를 지우고 그 자리에 경제를 채워넣는 모습이 확연해졌다. “경제살리기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위기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우리 입장은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는 것”(주호영 정책위의장)이라고 보상 문제로 초점을 돌렸다. ‘외부 불순세력 개입’ 주장 등으로 색깔론을 덧씌웠고, 세월호 가족들을 국민에게서 분리하는 전략을 쓰기도 했다. 1년 전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진상규명 문제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줬던 ‘물타기’, ‘치고 빠지기’, ‘침소봉대’ 등의 전략들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속에 진정성과 공감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어깨를 다독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좀체 없었다. 세월호 가족들과의 뒤늦은 면담에서 새누리당 협상단이 가족들을 얼싸안는 모습은 차라리 ‘희극’에 가까웠다. 이들에게 가족들의 국회 농성장은 “어디 뭐 노숙자들 있는 그런”(김태흠 의원) 곳이었고, 가족들의 단식은 “제대로 하면 벌써 실려가야 되는 것”(안홍준 의원)인지도 몰랐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오불관언(吾不關焉·나는 상관하지 않겠다)’의 태도를 보이는 사이 세월호 가족들은 점점 고립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신상털이와 마타도어와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 단식 농성장 앞에서 치킨·자장면을 먹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왜곡된 증오심 앞에 세월호 가족들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라 죄인이었다. 국가는 또다시 “인간을 비인간화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해가려는”(아주대 노명우 교수)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8·15 경축사에선 “적폐를 바로잡아 국가재도약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과연 ‘적폐’는 누구의 적폐를 말하는가. 적폐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은 누가 날려버리고 있는가.


김진우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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