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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환 경제부 기자


석가탄신일이 낀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오후 외교통상부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메시지의 내용은 ‘외교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 정오표 공개’였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한·미 FTA 한글본 정오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협정문의 번역오류로 인한 개정내용이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공표됨으로써 한·미 FTA 협상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여론 형성의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손을 들어줬다.


외교부는 지난 1월 “정정된 협정문을 공개했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는 이미 충족됐고, 협상 관련 문서는 발효 뒤 3년까지는 비공개”라며 항소를 제기했다. 정오표는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재판부의 결정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고 뒤로는 ‘딴짓’을 했다. 미국과 은밀하게 협의를 진행한 것이다.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 발효시점 발표 ㅣ 출처:경향DB

정오표 공개는 미국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협의가 끝나자 정오표를 공개했고, 법원에 낸 항소도 취하했다. 외교부는 미국과 협의를 진행한다는 것도 ‘밀실’에서 결정했다.

외교부는 정오표 공개의 다른 이유로 ‘한·미 FTA가 지난 3월15일 이미 발효됐다’는 점을 들었다. 외교부의 진짜 속내는 바로 이것이다. 국회 비준을 거쳐 한·미 FTA가 이미 발효된 마당이니 정오표를 공개해 여론이 나빠져도 반대론자들이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게다가 총선마저 끝난 터라 정치적인 이슈가 될 소지도 적다고 생각한 것 같다.

외교부는 지난해 6월 번역오류 296건이 있다고 공식 발표한 뒤 1년 만에 정오표를 공개했다. 외교부의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1년간 침해된 국민의 알권리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한·미 FTA 비준이 절대선’이라는 외교부의 인식은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과, 국민이 생각하는 국익을 다른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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