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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청탁과 함께 8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감 중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치소장 직권으로 풀려나 외부 병원에 입원했다. 법원은 이를 모른 채 최 전 위원장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을 잡았다. 그러나 풀어줄지 말지 심문하는 날에 당사자는 이미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재판장이 “당황스럽다”고 하자 검사는 “저희도 나중에 알았다.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경향신문DB)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수용자 처우법)’ 37조 1항에 따르면 구치소장은 수용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외부 의료시설에서 진료받게 할 수 있다. 법원이나 검찰의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고 법무부에 사후 보고만 하면 된다. 규정대로라면 최 전 위원장의 외부 병원 이송 과정에 위법 소지는 없는 듯하다. 그러나 법조문이 존재하는 것과 그 법조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구치소장이 직권으로 외부 병원 진료를 허용하는 경우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상황이 아닌 한 찾아보기 어렵다. 최 전 위원장 사건의 재판장도 “구속집행정지 결정이 나기 전에 병원에 가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더욱이 최 전 위원장은 구속된 지 20여일밖에 지나지 않은 터이다. 구치소 측이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법치국가의 상식이나 시민의 법감정과 거리가 먼 결정을 한 것은 분명하다.
구치소와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이른바 ‘범털’과 ‘개털’로 나뉜다. 정치인·고위관료·재벌총수처럼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은 범털이요, 내세울 것 없는 갑남을녀들은 개털이다. ‘범털 중의 범털’인 최 전 위원장의 외부 이송을 둘러싼 논란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환원될 수 있다. 서울구치소장은 개털에 속하는 재소자가 수감생활 20여일 만에 외부 병원 이송을 요청하면 법원과 검찰에 물어보지도 않고 허락할 것인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하기 어렵다면 이번 사안의 핵심은 특혜 의혹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최 전 위원장의 외부 병원 이송 경위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본다. 청와대 등 다른 기관의 지시나 압력은 없었는지, 교정행정의 책임자인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사전에 전혀 몰랐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관련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수용자 처우법 조항도 다시 검토해 허점이 있으면 보완해야 한다. 헌법이 규정한 ‘법 앞의 평등’이 구호에 그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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