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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박정희 정부 당시 국정 고교 교과서에도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술은 없었다. 뜬금없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때아닌 유관순 열사 논란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8일 지난해 검정을 통과해 올해부터 사용 중인 고교 한국사교과서 8종 중 4종에 유관순 열사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관순 열사처럼 중요한 사실이 빠진 교과서로는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메시지도 내놓았다. 이 상황을 국정교과서 전환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뜻이 엿보였다. 기사를 쓴 기자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의 기자간담회 때 “유관순이 없는 교과서가 문제 있지 않으냐”고 질문했고, 황 장관은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기사는 황 장관의 발언을 “국정 발행을 추진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고 해석했다. 이후 다른 보수언론에도 유사한 논조의 기사·사설이 이어지고 있다. 유관순 누락은 검정체제의 문제인가.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에 있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


경향신문이 29일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우리역사넷(contents.history.go.kr)을 확인한 결과, 유관순 열사는 해방 후 발행된 1차(1956년)·2차(1966년) 교육과정 교과서는 물론 1979년 유신정권에서 발행된 고교 국정교과서에도 전혀 서술이 없었다. 1982~1996년 발행된 4~6차 교육과정 교과서에선 3·1운동 부분의 각주에 “유관순의 순국 사실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는 짤막한 문장으로 서술됐다. 2002년부터 사용된 7차 교육과정의 마지막 고교 국정 교과서에선 유관순 서술이 다시 빠졌다.

교육부가 현행 교과서를 만든 각 출판사·저자에게 전달한 <고교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에는 3·1운동과 관련해 ‘3·1운동의 전개 과정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이해한다’고 돼 있다. 집필 기준 전체를 봐도 유관순을 비롯해 다른 특정인물을 넣으라는 지시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저자들은 이에 맞춰 교과서를 썼고, 검정을 통과했으며,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 논란 속에서 유례없이 대대적인 수정·보완 권고와 수정명령까지 끝난 후 교육부의 최종승인을 받았다. 수정·보완 당시 교육부는 출판사에 오·탈자까지 수십~수백개의 수정·보완사항을 지시하면서도 유관순 서술이 빠졌다는 지적은 하지 않았다. 유관순 논란이 벌어지는 지금 교육부가 침묵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은 “우리 교과서 체제는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춰 초등학교에선 유관순 등 인물 중심으로 3·1운동을 배우고, 중·고교에선 더 확장시켜 전체 역사 속에서의 맥락을 파악하도록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보수언론이 유관순 서술이 없다고 비판한 천재교육의 중학교 교과서엔 여성 독립운동가 4명을 집중조명하는 부분에 유관순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보수언론들은 유관순을 싣지 않은 출판사와 저자를 탓하지 말고, 유관순이 빠진 교과서를 승인해 준 교육부에 질문해야 한다. 황 장관은 정말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면, 유관순이 빠진 교과서를 수차례 검증하고 승인한 교육부의 잘못을 먼저 사과해야 한다. “유관순이 빠진 교과서가 역사왜곡”이라는 보수언론들은 정작 과거 국정교과서엔 유관순이 빠져 있었다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 4종이라도 유관순이 실릴 수 있는 현재의 검정 체제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송현숙 정책사회부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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