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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끝났다. 수영, 특히 경영은 고독과 싸우고, 질식의 두려움과 싸우는 종목이다. 온몸을 물속에 집어넣은 채 0.01초의 차이를 다툰다. 하루 1만m씩의 훈련이 이어진다. 여러 시간을 헤엄치는 동안 물속에 고개를 박아두는 시간이 많다. 고개를 들면 공기와 물의 저항이 만나 몸을 뒤로 끌어낸다. 고개를 물속에 집어넣으면 공기 없음의, 질식의 공포가 다가온다. 죽을 둥 살 둥 앞으로 헤엄쳐 나아가야 하는 종목이다.

유스라 마르디니(21)는 수영 코치인 아버지를 따라 3살 때부터 수영을 배웠다. 시리아 국가대표를 목표로 수영 실력을 키웠다. 13살이던 2011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됐다. 전쟁은 일상을 때로는 조금씩, 때로는 무참하게 바꿔놓았다. 이듬해 내전은 격화됐다. 다라야 학살 때 마르디니의 집도 무너졌다. 하루는 수영장 지붕에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영 동료 2명이 세상을 떠났다. 2015년 8월, 마르디니는 결심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마르디니는 언니와 숙부 둘과 함께 시리아를 떠났다. 지독한 탈출 여정이 이어졌다. 다마스쿠스를 떠나 레바논의 베이루트, 터키 이스탄불을 거쳤다. 밀수꾼들과 함께 움직였고, 난민들의 숫자는 그때그때 달라졌다. 터키에서 그리스 레스보스 섬으로 넘어갈 때였다. 6명 정원의 통통배에 마르디니와 언니를 포함해 20명이 올라탔다. 한밤 중 바다 한가운데서 고장 난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모두가 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수영선수였던 마르디니와 언니, 수영을 할 줄 아는 또 다른 남자 둘이 물로 뛰어들어 배를 밀었다. 남자 둘은 중간에 포기했지만 언니와 마르디니 둘이 3시간 반을 버텨 여러 생명을 구했다. 마르디니는 “배 위의 6살 꼬마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내내 웃으면서 배를 밀었다”고 했다.

마르디니는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 도착했다. 난민촌에 도착한 뒤 “수영을 하고 싶다”고 전했고, 테스트를 거쳐 독일의 도움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마르디니는 ‘난민팀’ 소속으로 레이스를 펼쳤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마르디니는 이번 광주 대회에도 참가했다. 이번에는 난민팀이 아니라 국제수영연맹 독립 선수(IFA) 소속이었다. 마르디니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 슬프다. 수영 경기를 앞두고는 일부러 뉴스를 보지 않는다”면서 “둘 모두 하는 것은 어렵지만, 수영도 열심히 하고, 평화를 위해서도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르디니에게 수영은 평화와 동의어다.

7월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자유형 800m 결승에서 중국의 쑨양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대회 내내 가장 큰 화제는 중국의 스타 수영선수 쑨양(28)이었다.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금메달을 두 개나 땄지만 시상식에서 ‘기념촬영 거부’ 소동이 벌어졌다. 쑨양이 지난해 9월 도핑 수시 검사 때 도핑 검사요원의 자격을 핑계로 자신의 혈액 샘플을 망치로 깨부순 게 가장 큰 이유다. 도핑 위반 혐의가 짙었지만 국제수영연맹(FINA)은 경고 조치만 했다.

대회기간 계속된 이른바 ‘쑨양 패싱’은 기념촬영 거부에서 레이스 뒤 악수 거부까지 이어졌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쑨양이 “죽도록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며 억울해 할 수 있지만 시상식 기념촬영 거부 선수를 향해 “중국을 무시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도가 지나쳤다. 마르디니는 내전의 공포 속에 나라를 떠났고 익사의 위기 속에 3시간 반 동안 배를 밀면서 수영을 했다. 쑨양은 자신을 둘러싼 도핑 혐의의 시선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뒤에 숨어 피했다. 스포츠를 위한 나라는 몰라도 나라를 위한 스포츠는 없다. 스포츠 앞에 국기가 설 때, 많은 부정과 불공정이 국기의 그늘에 가려졌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쑨양의 ‘중국 무시 말라’는 발언에서 트럼프가, 아베가 겹쳐 보인다는 점이 무척 씁쓸하다. 다른 많은 마르디니들의 노력이 묻힐까봐 더 그렇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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