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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결론을 앞질러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몇 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해 온 지도자와 선수들이 있다. 도쿄 올림픽의 책략적 요소가 있긴 해도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수년 동안 노력해온 땀방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국내외의 각종 선발 대회 및 출전권 획득의 과정이 있다. 이는 국제적인 약속이고 절차인 바, 이것이 모두 종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1년 후의 무대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음, 올림픽의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보이콧하는 것보다 의미 있다. 흔히 올림픽을 ‘세계인의 한마당’이요 ‘우애와 친선의 장’이라고 하지만 이는 장내에서 선수들이 펼치는 경연의 일이다. 장외에서는 온갖 스포츠 정치가 난무하고 글로벌 기업과 스포츠 권력이 충돌한다. 이를 분간해야 한다. 선수들의 땀방울에는 성원을 보내되 경기장 밖의 혈전에 대해서는 엄정한 시각으로 스포츠 권력과 일본 정치 책략과 글로벌 자본의 ‘각축전’을 비판하고 개입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시피 아베 정부에게 올림픽은 단순한 일본 사회 통합이나 국제사회에서 이미지 제고 정도가 아니라 보수적인 야욕의 경기장으로 확연해지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를 올림픽의 축포로 덮으려는 시도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현에서 시작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 올림픽’이라는 그들의 목표를 정확히 보여준다. 

성화의 첫 봉송지 결정은, 1964 도쿄 올림픽을 상기할 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 초창기에 성화는 지금처럼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를 전국으로 봉송하여 일종의 올림픽 스펙터클 문화 선전의 장으로 삼은 것은 히틀러였다. 히틀러로서는 성화를 아테네에서 개최 도시 베를린으로 직배송하기보다는 독일 전역의 도시를 순회하게 함으로써 파시즘과 올림픽의 이중 변주곡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를 고도의 전략으로 구사한 것이 1964 도쿄 올림픽이다. 이 대회의 성화 첫 봉송지는 오키나와. 성화는 오키나와의 주요 전적지를 순회하였으며 특히 전사자를 추모하는 히미유리노탑에서 전쟁고아가 성화를 높이 들었다. 그렇게 출발한 성화는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을 거쳐 도쿄에 입성하였고 히로시마 피폭 2세로 ‘원자 소년’이라 불린 청년이 최종 점화자가 되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일본은, 전쟁에 단지 패했을 뿐이며 원폭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임에도 세계 평화에 나선다는 식의 메시지를 정교하게 연출한 것이다. 

이 국가적 기획에 일본 전후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적극 동참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여러 경기장을 취재하면서 인간 신체에 대한 찬사와 올림픽에 대한 헌사를 쏟아냈다. 반면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히로시마 일대를 취재하여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올림픽이 극심했던 안보투쟁과 전공투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자민당 등 일본 우파 정치의 문화적 책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화려하게 마무리된 폐막식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전 세계 인간이 이렇게 손을 잡고 원을 이뤄 춤추는 감동”이라고 썼고, 오에 겐자부로는 무질서하면서도 자유롭게 들어선 외국 선수단과 달리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입장한 자국 선수단에 대해 “꽤나 쌩뚱맞은 느낌”이라고 썼다. 그는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서 올림픽 폐막 3년 후에 스포츠 스펙터클과 파시즘이 기묘하게 뒤엉킨 사태를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에 묘사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가 올림픽 기간 중에 격앙된 ‘애국심 따위는 TV 스위치가 꺼지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봤으나, 일본 우파는 무려 50여년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이윽고 아베 정부에 이르러 전쟁이 가능한 상태로의 헌법 개정, 경제보복, 후쿠시마 사태의 미봉과 정치 선전으로서의 ‘부흥’ 등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면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2020 도쿄 올림픽이 갖는 아베 정부의 정치외교적인 책략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낫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꿈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한편 장외에서는 올림픽에 노골적으로 스며드는 아베 정부의 반평화적인 측면을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올림픽을 알리는 홍보 지도에 왜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었는가를 지속적으로 따져 물어야 하며 후쿠시마는 과연 안전한가에 대해서도 세계적인 평화, 환경, 스포츠 단체들과 연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정부의 시도가 도쿄 올림픽의 여러 문화 행사와 장치들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의 수많은 오에 겐자부로와 만나야 한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아베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에 우려와 비판의 관점을 지닌 수많은 일본 시민들과 만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올림픽의 장외에서 진정한 평화와 우애의 행진을 해야 한다. 올림픽이 진실을 감추고 야욕을 펼쳐내는 장이 아니라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이며 그저 구호일 뿐인 ‘세계인의 축제’를 진정한 평화의 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적극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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