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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전성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1936년부터 1964년까지 29시즌 동안 월드시리즈에 22번 올랐고 16번 우승했다. 1940년대 양키스 감독이었던 조 매카시의 별명은 ‘테일 건’이었다. 비행기 뒤에 달린 기관총이다. 1970년대 양키스를 우승으로 이끈 빌리 마틴 감독의 별명은 ‘히틀러’다. 그 시절 야구 감독은 ‘권위’의 화신이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9년 연속 재팬시리즈를 우승했다. 2차대전 패전국 일본의 전후 부흥시기와 맞아떨어지며 요미우리는 ‘국민 구단’으로 떠올랐다. 그때 감독이 가와카미 데쓰하루였다. 일본 프로야구 첫번째 ‘제왕적 감독’이자 ‘관리야구’의 시초였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다. 보안을 이유로 취재를 제한했고, 선수들의 집에 전화를 걸어 귀가시간을 확인했다. 뭘 하고 있는지는 물론 뭘 먹고 있는지도 감시했다.

관리야구는 한국야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엄한 표정과 카리스마로 스타 선수들을 장악할 수 있어야 팀워크가 유지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는 신화였다. ‘자율야구’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은 1994년 LG 트윈스의 우승 때였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야구를 보고 돌아온 이광환 감독은 관리 대신 선수들의 자율에 방점을 찍었다. 이 감독의 ‘파이브 스타 시스템’은 매 경기 감독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선수 기용이 아니라 정해진 틀 속에서 선수들이 자기 역할을 맡아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그해 신인 3인방(유지현, 서용빈, 김재현)이 펄펄 날 수 있었던 것은 관리가 아니라 자율 덕분이었다. LG는 ‘신바람 야구’ 열풍과 함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5년 전의 일이다.

새해 들어 쇼트트랙 심석희의 용기 있는 ‘미투’로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혔다. 전근대적인 합숙훈련이 문제의 이유로 지적됐다. 스포츠계는 반발했다. 합숙훈련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단체경기만이 아니라 개인경기도 합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경쟁함으로써 자극이 되고 이를 통해 실력이 는다는 논리였다.

논리는 빈약하고 근거는 부족하다. 합숙의 효과는 경기력 향상이 아니라 감시를 통한 권위의 확립, 유지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빌리지 않더라도 합숙은 통제를 낳고, 통제는 감시와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 지켜보는 이와 감시받는 이의 위계는 엄격하다.

지난달 말, 쇼트트랙의 김건우는 동료 김예진에게 감기약을 전해주려 여자 선수 숙소에 들어갔다가 3개월 퇴촌, 국가대표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훈련 관리지침’ 21조 일반수칙 1항 6 ‘남·여 지도자 및 선수는 남자 또는 여자 전용 숙소에 출입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 성폭력 예방을 넘어 오래된 관리와 통제의 냄새가 짙다. 1항 5는 ‘촌 내에서는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착용을 원칙으로 하며, 생활 질서를 해치는 언행과 복장은 허용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심지어 관리지침 8조 2항 1은 국가대표 선수의 임무로 ‘촌 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을 규정했다. 이번 시즌 월드컵 금3, 은2을 딴 김건우와 전국동계체전 금3을 딴 김예진은 이번 징계로 대표선발전에도 못 나간다.

엘리트 스포츠 스타들의 경기력은 과학적 트레이닝 방식의 발전으로 임계점에 다다랐다. 한계를 넘게 하는 것은 통제를 통한 집중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을 통한 창의적 접근이다. 수영 박태환과 피겨 김연아는 되레 ‘선수촌’으로 상징되는 합숙과 통제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다. LPGA 무대를 주름잡는 한국 여자 골퍼들이 단체 합숙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부디, 효율을 핑계로 관리와 통제를 통해 제 권위를 지키려는 ‘꼰대’ 짓은 그만하자.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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