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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문체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의 차관 4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차관급 상임위원이 참여한, 그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혁신 의지가 강력하게 실린 위원회다. 여기에 선수 출신을 중심으로 하여 스포츠와 인권 관련 학자와 활동가 등 15인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출범 초기에는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식의 형편없는 마타도어까지 있었는데, 터무니없는 비방은 그 방향이 옳다는 증거라는 니체의 믿음 아래 혁신위는 곧 한국 스포츠의 아름다운 대전환을 위한 각종 권고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자배구 대표 선수로 탈아시아급 ‘거포’로 활약한 후 학자의 길로 들어서서 오랫동안 무명의 여성 선수들을 따스하게 감싸며 길러낸 김화복,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으로 유럽에 진출하여 은하계 최고의 선수들과 용쟁호투를 겨룬 후 유소년 축구의 혁신에 매진하고 있는 이영표, 동계올림픽 모굴스키의 선구자로 선수들의 인권 침해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고 또한 그 개선을 위해 헌신하는 서정화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여기에 프로선수 출신이자 뛰어난 분석과 해설로 잘 알려진, 그러나 실은 ‘공부하는 학생 선수’라는 선진적인 유소년 성장 모델을 일찌감치 실천해온 이용수, 또한 그같은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 이론과 정책을 20년 이상 연구해온 이용식, 류태호, 이대택 등의 참여는, 혁신위가 한국 스포츠의 안과 밖, 그 이론과 현장, 그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가히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갖춘 곳임을 확증한다.
여기에 스포츠를 인권과 문화의 관점에서 꾸준히 살펴온 전문가 서너 명이 결합했다. 이 또한 오늘날의 스포츠가 지닌 사회적 복합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필수적이다. 더구나 이 혁신위가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이라는, 결코 ‘개인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십년 누적된 폭력 구조의 치명적인 병폐에 의해 출범한 것임을 고려할 때, 지극히 당연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두 달 남짓 활동하는 동안 혁신위의 출범 근거와 그 타당성은 ‘불행하게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폭력 및 성폭력으로 집약되는 스포츠계의 구조적 모순은 흡사 자욱하게 드리워진 미세먼지처럼 복합적인 것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한 혁신은 스포츠계 전체를 관류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대한체육회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여 체육시스템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으로도 확인된다. 대한체육회가 진천선수촌의 안전시설 확충, 훈련관리지침 개선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곧 현실화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국가 차원에서 과감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국가는 수십년 누적된 국가주의와 승리지상주의를 스스로 개선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온갖 부정비리와 끔찍한 인권 유린이 반복되어 왔다. 국가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그래서 때로는 산하기관의 문제인 것처럼 슬쩍 외면해 온 스포츠의 제도, 여건,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 기재부, 교육부, 여가부 등의 차관이 혁신위에 참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체육회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국가가 개입하고 나서는 게 결코 아니다. 대한체육회가 할 일이 있고 국가가 할 일이 있다. 현장의 낙후한 시설과 환경은 대한체육회가 개선하면 된다. 국가는 그보다 더 총체적이며 장기적인 스포츠 정책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모든 정책 진단과 전환은 국가의 의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항간의 ‘이기흥 체제 흔들기’나 ‘엘리트 체육 죽이기’ 같은 말은 듣자마자 귀를 씻을 정도로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악독한 요설이다. 생각해 보라. 국가가 왜 그런 일을 도모할 것이며 더욱이 민간위원들이 왜 그런 험악하면서도 한 줌의 가치도 없는 일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주말도 없이 활동하겠는가.
혁신위의 목표는 국가에 국가의 의무를 준엄하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누구나 스포츠를 즐겁게 접하여 평생 신체적 즐거움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할 것, 그중 뛰어난 아이들은 인권과 문화와 학습의 결핍이 없는 조건에서 과학적인 시스템과 상호존중의 문화로 길러낼 것, 열심히 훈련하는 바람에 땀방울은 흘릴지언정 뿌리 깊은 폭력의 구조에 의하여 피눈물은 흘리지 않도록 할 것, 수많은 지도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되고 그 처우가 개선되어 스포츠 전문가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으며 살아가게 할 것.
이를 소홀히 하여 숱한 병폐와 비리와 폭력이 발생하였으니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계 전반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통렬하게 재점검하고 장차 ‘스포츠를 통하여’ 한국 사회를 문화적, 사회적, 인간적으로 선진화시켜야 한다. 혁신위는 그런 이유로 출범한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는 아름다운 분야이고 그 지도자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최고 전문가들이다. 이 순간 스포츠는 ‘도구’가 아니라 ‘가치’로 발전하며, 이럴 때 선수와 지도자들은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 진실로 아름다운 사회적 존중까지 받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하여 지금 우리 스포츠계에서 권위와 명망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기꺼이 동의하고 동참해야 한다. 이를 그 무슨 ‘흔들기’나 ‘죽이기’ 같은 고약한 말로 왜곡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수들의 피눈물 위에 앉아서 오랜 구습이 던져준 서푼어치 추악한 권위에 젖어 스스로 혁신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격이니, 그 무엇보다 새로운 스포츠 환경과 더 나은 삶의 안정을 바라는 모든 스포츠인으로부터 반드시 외면받게 될 것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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