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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성폭력 문제로 체육계는 물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대통령까지 나서 근절 의지를 강력히 천명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헛발질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올림픽 메달 연금과 소년체전을 폐지하고, 대한체육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겠다는 문체부의 발표 이후 체육계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됐다.

이 문제들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 논의되어 온 체육계의 뜨거운 쟁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선 선수들의 인권 회복에 집중하고 그 후에 지혜와 여론을 모아 서서히 풀어가야 할 사안들이다. 그러나 정부의 안이한 대책은 앞으로 제2, 제3의 심석희가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이기홍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이사회에 앞서 체육계 폭력과 성폭행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한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김정근 기자

엘리트 체육을 퇴보시킬 수 있는 정부의 섣부른 대책에 체육계는 한목소리로 반발하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과 공포를 이겨내고 자신을 세상에 던진 심석희 선수의 용기는 자칫 “이 문제 때문에 메달 연금이나 소년체전만 없어지게 되지 않았느냐”는 주변 체육인들의 원망에 묻혀버릴 판이다. 심 선수에게 너무도 민망하고 미안한 상황이 됐다. 향후 대대적으로 폭력, 성폭력 실태조사를 시행하겠다고 하면서 문체부가 섣불리 발표한 대책은 오히려 선수들의 입을 막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정부의 어설픈 대책은 체육계와 전문체육 선수들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내놓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심 선수의 폭로 직후 이런 분위기는 충분히 예견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조재범 전 코치는 여전히 결백을 주장하고 있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어느 누구도 내 탓이고 우리 탓이라는 자책과 반성을 내놓지 않았다. 대한체육회장이 여론에 떠밀려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성을 하지 않기로는 문체부 장관과 체육을 담당하는 제2차관도 마찬가지다. 체육계의 폭력, 성폭력은 조금만 고개를 돌려봐도 확인할 수 있는 문제였다. 굳이 10년, 20년 전 일들을 들추지 않아도 현재 어떤 일이 얼마나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지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공무원들이라면 살펴봐야 할 문제들이었다. 몰랐다면 엄연히 직무태만이고, 알고도 눈감고 있었다면 직무유기다.

문제 해결의 출발은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와 체육계 현장에만 화살을 돌리지 말고 자신들에게 먼저 엄격해야 한다. 일만 터지면 혁신위원회니 무슨 위원회니 만들어 자신들의 잘못과 허물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거나 시간만 보내려 해서는 안된다.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으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각의 혁신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은 졸속의 압권이다.

대한체육회장은 이미 체육계와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잃었다. 비상근직이고 명예직인 대한체육회장이 존경과 신뢰를 잃으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자신의 말대로 현안을 ‘조속히’ 해결하고 빨리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문체부 장관·차관은 좀 더 분명한 처신과 정부다운 대책을 보여야 한다. 어렵사리 피워놓은 군불을 살리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서야 되겠는가.

<강신욱 | 단국대 교수 전 한국체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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