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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인 한 견공이 있다. 공장 한편에서 쇠사슬에 묶여 지내던 백구 ‘1미터의 삶, 진돌이’. 녀석에게 처음 산책과 바다 구경을 시켜주는 등의 체험담을 전하는 채널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마치 보는 사람이 진돌이가 된 듯, 해방감마저 느끼게 한다.

몇개월 전에는 TV에서 우연히 ‘샤넬’을 봤다. 샤넬은 주차장만 지키고 앉아 있다. 산책을 가자고 나서면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됐다. 억지로 질질 끌려나가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줄을 놓으면? 마구 뛰어 주차장으로 되돌아갔다. 샤넬은 군견으로 이용됐던 셰퍼드다. 덩치는 작은 송아지만 하지만 겁쟁이다. 군견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가정에 입양됐다. 이는 한참 지난 재방송인데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나온 사연이다. 샤넬은 군복무 시절 밖에 나와선 용변만 보고 빨리 견사로 들어가야 하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외출에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강형욱 동물훈련사는 풀이했다.

여론을 뜨겁게 달군 ‘메이’의 사연은 또 어떤가. 이 비글은 인천공항에서 검역 탐지견으로 활약하다 은퇴했다. 인간들의 안전을 위해 헌신한 뒤 이병천 서울대 교수의 복제견 연구팀에 지난해 3월 되돌아왔다. 이른바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을 위해서다. 무슨 인공지능(AI) 로봇견 고안 작업처럼 들린다. 태생부터 철저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메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비틀대다 폐사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근세에 머물러 있다. 인간의 탐욕을 위해 자연은 언제든, 어떻게든 이용되고 조작되고 파괴돼도 괜찮은 그저 ‘대상물’일 뿐이다. 몸에 좋거나, 덜 해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나와 다른 약한 존재가 고통받아도 마땅한가.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지난해 8월 기자칼럼에서 소개했듯, 몰티즈 ‘소다’를 키워보니 샤넬이나 메이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미국 뉴욕, LA 등에선 모피 제품 판매를 전면금지하는 법안이 나왔다. 모피업계 반발을 무릅쓰고서다. 올 8월 부산 구포 개시장 폐업에 부산 사람들은 77%가 잘한 일이라고 반응했다.

소다를 통해 부쩍 고민되는 지점이 사실 육식이다. 하지만 채식을 실천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다. 또 다른 고민거리는 중성화다. 중성화의 목적은 몇가지 있는데, 의료인들은 각종 호르몬 관련 등 질병 예방을 강조한다. 키우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런저런 편리함 때문이다. 인간 편의를 위해 자연번식을 억제하는 조치가 바람직한가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휴대폰을 쓰기 편하게 만들려고 어떤 부품은 빼버리듯 생명을 대하는 건 아닐까.

질문의 끝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냐’는 데까지 닿는다. 강아지를 키워보고 내린 결론은 오히려 부정적이다. 비윤리적인 ‘강아지 공장’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고안된 생명이더라도 태어난 이상은 잘 보살펴줄 책무가 있다.

몇주 전 동네에 한 코숏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고 한다. 태풍 링링을 앞두고 걱정돼 비를 맞으며 밤중에 플래시를 들고 산을 헤매는 주인의 심정을 일반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고속도로 휴게소를 중심으로 잔인한 추석 연휴가 재연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반려견, 반려묘들이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질까. 깜빡한 ‘엄마, 아빠’가 다시 찾아올 거라고 버려진 곳을 배회하며 비슷한 자동차를 유심히 살펴보던 TV 화면 속 댕댕이들의 모습이 선하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어린 양의 삶이 인간의 삶보다 가치가 덜한 게 아니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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