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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이후 국회에 발의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의 무관심 속에 오는 11월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사립유치원 비리가 폭로되고, 학부모들이 분개하자 국회도 덩달아 들끓었다. 사태 한 달 만에 법안이 마련됐다. 여야 할 것 없이 “이런 법안은 빨리 처리하자”며 새로 도입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유치원 3법을 태웠다. 의원들 여럿이 “연내(2018년) 처리를 기대한다”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열 달이 지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1월 말 본회의 표결 예정인 유치원 3법은 통과는커녕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본회의에 올라오기 전 국회 교육위원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거치며 충분한 여야 합의가 이뤄져야 법안 통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유치원 3법은 교육위에서 180일, 법사위에서 90일을 먼지만 뒤집어쓴 채 지냈다. 그나마 본회의로 가는 ‘자동 상정’ 기능을 갖춘 패스트트랙에 법안을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폐기됐을 것이다. 어차피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낮지만 본회의에서 운좋게 통과된다 한들 ‘누더기’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표결을 코앞에 두고 여야 대표랍시고 몇몇이 모여 볼펜으로 박박 고쳐 만든 법이 제대로일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의원이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유치원 3법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한 해 30여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 중인 대한민국의 ‘금쪽같은’ 아이들이다. 저출산 여파로 올해는 신생아 30만명 선도 무너질지 모른다. 이 아이들 10명 중 9명 이상이 유치원에 간다. 유치원 취학 가능 연령인 5세까지, 어린이집을 피해가며 어떻게든 가정 보육을 해보려는 부모들도 유치원엔 아이를 보낸다. 덜 먹고 덜 입을망정 연간 수백만원에 달하는 유치원비도 기꺼이 지불한다. 유치원은 법으로 규정된 교육과정이 있는 ‘유아 학교’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도심 초등학교도 주변 유치원 배정을 기준으로 1학년 반을 짠다. 유치원에서 만난 한 아이가 평생 ‘동네 친구’가 되기도 한다.

법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때로는 이해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는 법도 있다. 유치원 3법이 그렇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낸 돈을, 국가가 아이를 위해 보조해준 세금을 핸드백이나 성인용품 사는 데 쓰지 말고 그대로만 아이한테 써달라는 게 유치원 3법의 취지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법안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더 보완하거나 고칠 곳은 없는지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애들 보기 부끄럽다는 말은 정녕 이런 때 쓰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기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최근 경기도교육청 감사에서 수백억원대의 교비 횡령 의혹이 적발돼 고발된 모 사립유치원 설립자에 대해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두 차례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 대부분이 설립자나 원장이 교비와 사비를 구분 없이 한 통장에 넣고 마음대로 써온 것에서 발단이 됐는데, 검찰이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대놓고 면죄부를 준 셈이다. 한 시민단체는 법무부에 해당 사건에 감찰을 요청하기도 했다.

교육부도 유치원 3법이 방치된 데 대한 책임이 있다. 사립유치원들이 올 2월 개학연기 투쟁을 접은 건 학부모들의 ‘분노’ 때문이지 교육부의 ‘능력’ 덕분이 아니었다. 일례로 교육부는 “대형 사립유치원들의 에듀파인 도입률이 높다”며 자랑했지만 결국 돌아온 건 유치원장들의 행정소송 소장이었다. 지금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할 일 역시 에듀파인을 도입해 잘 쓰고 있는 사립유치원에 방문해 사진을 찍을 게 아니라, 유치원 3법이 왜 시급하고 필요한지 국민과 국회를 한 번이라도 더 설득하는 것이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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