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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방송채널을 돌리다 보면 토론방식의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종편은 하루 대부분의 방송시간을 이런 프로그램들로 편성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몇 명의 전문가 패널과 해당 방송사 소속 기자가 그날그날의 사건, 사고를 주제로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재미있는 건 많은 경우 패널로 참여한 이들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주제들도 논평한다는 점이다. 정치평론가가 연예계 사건도 해설하고, 문화평론가가 법률적 이슈도 해설하는 식이다.

전문가는 오랜 학습기간을 거쳐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한편 지식인은 이러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필요할 때마다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한다. 일단 전문가로 인정받으면 대중적 신뢰와 권위가 생긴다. 방송언론에서 이들을 많이 모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가 곧 지식인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민주화 이후부터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지식인의 역할에 관한 논쟁이 뜨거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문제의식이 실종된 느낌이다. 지식인 스스로가 자초한 면도 있고 환경이 바뀐 것도 있다. 민주화 이후 긴 호흡의 통찰이나 치열한 담론생산이 거의 사라졌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에 포섭되어 권력의 향방에 따라 입지를 서로 뒤바꿀 뿐이다. 엄격한 비판정신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결여된 이른바 전문가들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SNS)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려 대중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전문지식인들의 입지는 전보다 훨씬 좁아졌다. 바야흐로 모두가 지식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지식인’ 시대다.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지식을 터득할 수 있는 소질을 타고난다. 조선시대처럼 학문적 지식을 전담하는 신분층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체계가 약화되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누구나 고등학교까지는 교육받는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한다. 소위 ‘대중 지성’이 가능한 시대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환경에서는 지식인의 정의를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인은 건전한 상식, 상당한 전문지식, 그리고 미래의 변화에 대처할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춘 사람이다. 시대와 소통하며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유연한 창의성, 그리고 남들과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덕성을 겸비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지금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50-30 클럽’(5000만 인구에 1인당 소득 3만달러)에 가입할 정도로 큰 나라가 되었지만, 저성장과 양극화의 심화로 국가 경제는 물론 공동체 자체가 위험에 처해 있다. 또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노력으로 1987년 이래 제도적 민주화를 성취해냈지만, 그 ‘87년 체제’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가로막아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렇게 사회가 정치, 경제적으로 양극화되면 상호관용과 상생발전이라는 공동체적 가치가 설 땅은 없다. 지식인의 치열한 고민과 창조적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한국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먼저, ‘More Open’,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보다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가 존중받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공동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정치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국내 거주 북한 이탈주민이 3만명을 넘어섰고, 외국인 노동자나 귀화 외국인도 2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와 일상을 함께하며 사는 이웃들이다. 수도권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은 이미 다민족 공동체로 진입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을 ‘타자화’하는 순간 한국사회는 또 다른 갈등의 뇌관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함께 살아갈 방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두 번째는 ‘More Compassionate’, 더 따뜻해져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원조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었다. 다른 나라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다. 첨단 산업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것도 좋지만 도움이 필요한 나라와 희망과 비전을 함께 나누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피폐했던 경제를 재건하고 권위적인 정치체제를 민주체제로 바꾼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산업화와 민주주의 역량을 갖춘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차례가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동반성장 문화가 필요하다. 끝으로 ‘More Confident’, 더 자신감을 갖자. 한국은 과거의 고립된 은둔자나 약한 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여러 가지 과제가 있지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조화로운 체제를 만들면서 글로벌 리딩 국가로 도약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당당하고 주체적이며, 세계에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자신감을 갖고 지구촌 곳곳에서 평화와 안전, 인류의 진보를 위한 역할을 더 확장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국은 그럴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다.

공동체 내에서 지식인의 위상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본질적 책무는 변하지 않는다. 지식인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정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탈속적이든 세속적이든, 혹은 권력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전문지식의 보유자로서 학문과 현실을 매개하고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 비판하는 지식인의 책무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와 문화, 체제와 인간, 과학기술과 윤리 등 사회 내부에서는 다양한 층위에서 불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시대를 통찰하는 창의적인 지식생산자가 없다면 공동체의 지속이나 인류의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도 지식인은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데 세계를 잘 모를 뿐 아니라 그런 자신에 대한 고민조차 없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문제는 스스로를 성찰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자각하는 것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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