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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는 1998년 창단했다. 함께 생긴 팀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다. 애리조나는 ‘사막 방울뱀’이 팀 이름이다. 탬파베이는 ‘악마 가오리’다. 둘 다 신생팀답게 패기 넘치는 ‘쎈’ 이름을 썼다. 애리조나는 김병현 때문에 국내팬들에게도 친숙하다. 창단 3년째이자, 김병현이 뛰던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탬파베이는 따라가지 못했다. 기를 썼지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보스턴과 뉴욕 양키스 등 쟁쟁한 팀이 워낙 많았다. 우승은커녕 꼴찌를 도맡아 했다. 1998~2007년 10시즌 동안 9번 꼴찌였다. 100패를 넘긴 게 3번, 99패도 2번이었다.

팀 성적이 나쁘니, 돈을 벌기 힘들었다. 돈이 없으니 투자를 못하고, 성적은 계속 바닥이었다. 빈센트 나이몰리 구단주는 닦달했다. 온갖 일에 참견을 하면서 비용을 쥐어짰다.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구장 내 음식물 반입 금지 규정’을 감시했다. 한번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들고 온 견과류 한 봉지를 트집 잡았다. 경기장에서 내쫓았다. 당뇨병 ‘비상식’이었다는 해명도 소용없었다. 단체관람을 온 노부부는 결국 경기장에서 쫓겨나 버스에서 3시간 동안 동료들을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외부 음식물을 발견하면 해당 관중에게 다가가 ‘어느 문으로 들어왔냐’고 물었다. 나이몰리는 해당 문을 지키는 직원을 해고했다.

팀이 바뀐 것은 구단주가 바뀌고 나서였다. 2005시즌이 끝나고 월스트리트 출신들이 탬파베이를 인수했다. ‘악마 가오리’에서 ‘악마’를 뺐다. 새 이름 레이스(rays)는 가오리라는 뜻과 함께 ‘햇살’을 뜻했다. 2년 동안 내실을 다진 뒤 2008년 대변신에 성공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양키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10년 동안 꼴찌만 하던 팀의 극적인 대변신이었다. 탬파베이 성공 이유 중 하나는 ‘시프트’였다. 내야수들의 위치를 상대 타자 타구 성향에 따라 폭넓게 이동시켰다. 새 경영진은 월스트리트 출신답게 숫자를 분석해 방향을 제시했다. ‘혁신의 대명사’인 탬파베이 조 매든 감독과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만년 꼴찌는 수비에서 1등이 됐다. 점수를 덜 주고, 경기를 이겼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시프트는 전통적인 수비 위치와 다르게 선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반대한다. “야구가 120년 동안 수비 포지션을 유지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증거는 없지만 오랫동안 해왔으니 그게 맞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탬파베이의 성공 이후 시프트는 대세가 됐다. 2011년 메이저리그 경기 전체에서 수비 시프트는 2350번 이뤄졌다. 2016년에는 2만8130회로 늘었다. 5년 사이 10배 넘게 증가했다. 시프트에도 중요한 요소가 있다. 야구공은 예측 불가능하다. 확률은 존재하지만, 확률이 100%를 뜻하지는 않는다. 수비 위치를 볼펜으로 콕 짚어줄 수는 없다. 수비수는 자신의 수비 범위와 송구 능력을 감안해 시프트 위치를 정한다.

KBO리그에서 가장 내야 수비가 강한 팀은 두산 베어스다. 유격수 김재호와 2루수 오재원은 엉뚱해 보일 정도로 과감하게 수비 위치를 옮긴다. 벤치의 지시가 아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 감이 올 때가 있다. 그러면 직접 수비 위치를 조정해주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면서도 “만약 감독이 수비 위치를 조정했고, 그게 맞아떨어졌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제대로 했는데, 무슨 문제? 김 감독은 “감독의 수정 지시가 적중하면 그다음부터 선수가 감독 눈치를 보느라 제 마음껏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한마디도 안 하고 참는다. 그게 두산 내야 수비가 강한 이유이자 비결이다.

좋은 사장님이 되려면? 다시 말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야구 시프트의 교훈. 만기친람하지 말 것. 옛날부터 해오던 게 무조건 좋은 거라고 우기지 말 것. 참견하고 싶어도 맡겨둘 것.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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