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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대회 우승팀 독일 축구대표팀의 ‘캡틴’ 필립 람과 러시아의 슈퍼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피파 트로피를 들고 입장했을 때,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는 ‘황금의 엑시터시’가 울려 퍼졌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품으로, 세 명의 총잡이가 욕망의 극한에 이르러 최종 승부를 겨루는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다.

순간, 나는 탁월한 선곡이라고 생각했다. 월드컵 결승전이라, 전 세계 10억명이 몰입하는 최고 수준의 황홀경 아닌가. 과연 마지막 최종전은 10억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예측불허의 상황을 거듭하며 끝까지 극단의 황홀경을 선사했다. 누구도 연출할 수 없는 폭우까지 내려 450g도 안되는 축구공이 빚어낸 한 달의 여정을 시원하게 적셨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들이었다.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누구도 최종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극장 골’의 연속, 736명의 모든 출전 선수가 주연이었다. 각국 대표팀은 저마다 개인적 사연과 그 나라의 집합적 열망을 러시아 전역에 투사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장 인상 깊은 팀은 이란과 벨기에. 흡사 지옥의 게임에 출전한 듯한 이란은, 비록 ‘뷰티풀 게임’을 보여주지는 못했어도, 어차피 인생이란 진흙탕에서 기어 나오는 것이라는 듯, 그들만의 방식대로 마지막 한 방울 땀까지 잔디에 적셨다. 벨기에는 3위로 등극하는 마지막 경기까지 독창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축구란 1초 전에는 무의미했던 공간을 신묘한 상상력으로 유의미하게 창조하는 우아한 행위임을 입증했다.

반면 잉글랜드는 마지막 경기를 무기력하게 끝냈다. 이미 그들의 응원가인 ‘축구가 집(잉글랜드)으로 돌아오고 있네’라는 노래는 준결승전 후 맥이 풀린 다음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복장. 그는 모든 경기마다 세련된 조끼를 입고 나왔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전통주의를 상징함은 물론 최근 영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점점 세계 경제의 핵심에서 고립되고 이에 따라 테레사 메이 내각의 주요 장관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홍역 속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끄는 축구팀의 선전이었다. 안타깝게도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은 잔디 위에서 할 일을 다했다. ‘신영국병’을 치유하는 것은 선수들의 의무가 아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프랑스를 물리치고 우승했을 때, 독일 언론은 “트로피는 이탈리아, 진정한 챔피언은 독일”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은 적이 있다. 그 대회에서 독일은 3위를 했는데, 2차 대전과 분단 이후 독일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거리와 광장에서 국기를 흔들고 국호를 외치는 일이 사실상 중지되었으나 월드컵으로 인하여 어두운 역사가 드리웠던 오랜 심리적 부채를 조금은 씻어낼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자면, 이번 대회 우승은 프랑스가 했지만 진정한 챔피언은 크로아티아다. 아, 물론 시상대에서, 폭우가 내리자마자 잠시나마 혼자서 우산을 썼던 푸틴이 진짜 우승자이긴 하지만 말이다.

축구장 바깥의 크로아티아 상황은 여의치 않다. 2008년에 9%였던 실업률이 2014년에는 무려 22.7%였다. 2018년 초, 11.5%로 다소 안정화되었지만 고등교육을 받거나 일정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아드리아해 주변의 아름다운 관광 도시가 크로아티아를 연명시키고 있다.

2017년 6월 선거를 통해 수도 자그레브 시장으로 6번째 당선된 반디치 시장은 2014년 부패 혐의로 긴급 체포된 적도 있다. 그럼에도 6차례나 당선되었는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시민들은 반디치 시장의 부패를 알고 있으나,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인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매우 공격적으로 연합 전술과 대중 정책을 구사해온 우파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 기반이 되는 가톨릭 세력과 함께 점점 더 민족주의적 발언과 인종 혐오를 앞세운다. 아드리아해의 보석 두브로브니크 같은 곳에서는 크로아티아의 이런 혼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골든볼’을 수상하며 이번 대회 최고의 선수로 떠오른 모드리치는, 어쩌면 월드컵 이후 심각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 크로아티아 검찰이 크로아티아 최고 구단인 디나모 자그레브의 마미치 전 회장을 횡령과 탈세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팀 소속이었던 모드리치의 ‘거짓 증언’을 재판에까지 회부했기 때문이다. 마미치는 크로아티아의 모든 축구팬이 혐오하는 부패의 상징이다. 이 자에게 모드리치가 연봉의 일부를 상납하고 거짓 증언까지 했다는 것이 유죄로 확정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어쩌면 크로아티아 팬들이, 그리고 시상대에서 모드리치를 눈물로 포옹해준 콜린다 대통령이 모드리치를 용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이 축구장의 ‘엑시터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축구장의 열기에는 정치적 열광이 늘 어느 정도 투사되기 마련인데, 직업적으로 그것을 부풀리거나, 없으면 만들어내기도 하는 정치인들이 월드컵의 엑시터시를 한여름 밤의 꿈으로 흘려보낼 리 만무하다.

모드리치를 포함한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1990년대 초반 내전 시대에 태어나 끊이지 않는 포성 밑에서 축구를 배웠다. 그랬는데 이제 그들의 월드컵 쾌거가 자국민의 자유를 일정하게 제한하거나 다른 인종이나 종교에 불관용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축구장의 엑시터시가 발칸반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는 파시즘의 전조가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여름 밤의 꿈’이 낫지 않은가. 선수들의 땀과 팬들의 눈물이 장외의 정치적 열광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지금의 발칸반도에서는.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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