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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스키 1인자였던 미국의 린지 본은 올해 초 은퇴하면서 “그동안 열몇 살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려니 내가 너무 늙은 기분이었다”는 말을 했다. 본은 1984년생, 만으로 34세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1980년대 후반생이 중고참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 3월 이후 출생한 선수들이 올해 프로에 입단했으므로 1980년대 후반생이 맏형이 되어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어느덧 우리는 2000년대생이 스포츠 무대에서 입신양명하는 시대에 와 있다.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U-20) 월드컵 최우수선수상(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이 2001년생이다.

누구나 ‘요즘 애들’과 세대 차이를 경험하는 순간이 있다. 지난해 출간된 <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대와 소통해야 할 필요가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어린 선수들에게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이끌어내야 하는 스포츠 지도자들이야말로 ‘요즘 애들’과의 소통 기술이 요구되는 사람들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트래킹 데이터 장비로 투구 궤적과 회전율을 파악하고 타구 발사각을 측정해 선수 훈련과 전력 분석 등에 활용하는 게 유행이다. 감독과 코치 대다수는 이런 데이터 없이도 삼진을 잡고 홈런을 쳤던 세대지만 젊은 선수들은 다르다. 이들은 코치의 경험보다 데이터를 더 신뢰한다. 코치가 투구나 타격 메커니즘 등을 지도할 때 자신의 주장을 데이터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선수를 설득하기 어렵다.

류현진의 LA 다저스 동료인 1994년생 선발투수 워커 뷸러도 이런 부류다. 이닝 수와 실점 등 경기 결과보다 데이터상 공의 움직임과 회전율에 일희일비한다. 마운드에서 8실점을 했어도 데이터가 만족스럽다면 “오늘 대단했다”며 좋아한다. 

메이저리그의 어른들은 이런 선수들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애틀랜타의 1952년생 론 워싱턴 코치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요즘 선수들은 직업윤리라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한탄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1955년생 감독 네드 요스트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는 “예전엔 감독이 호통쳐도 선수들이 다 귓등으로 흘려들었지만 요즘 선수들은 2주일은 침울한 기분으로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우리 때는 데이터 없이도 잘했다’거나 ‘너희들은 너무 유약하다’고 훈계했다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선수들의 신망을 잃고 현장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현실은 그 반대다. 이들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법을 적극 공부하고 선수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U-20 월드컵 대표팀의 성공 비결 중 하나도 소통이다. 정정용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이 전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술 전개와 옵션을 상세히 설명한 ‘마법노트’를 만들어 나눠줬다. 선수들은 이것을 보며 전술을 몸에 익히고 실전에서 활용했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격려했던 정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팀을 뭉치게 했다.

책을 읽어가며 탐구해야 할 정도로 낯선 세대가 스포츠 주역이 되는 시대에 체육 정책과 체육계 어른들이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4일 정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학교 스포츠 정상화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기단체 등 현장 체육인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권고안 철회를 촉구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학교 스포츠의 문제점, 인구 감소에 따른 선수 수급의 어려움,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세대의 등장 등을 고려하면 현행 제도에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무작정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하지만 정부의 방향이 옳다 해도 현장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실행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상호 소통의 기술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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