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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나빴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나선 한국 대표팀은 예선 첫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패하면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물리쳤으나 본선 진출은 장담할 수 없었다. 3차전 상대는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였다. 이기기 어려울 것 같던 이날 경기에서 대표팀은 승리해 16강에 올랐다. 지난달 31일에 전해진 16강 진출 낭보는 하루 전 발생한 헝가리 다뉴브강의 참사로 슬픔에 잠긴 국민들에겐 더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이강인(가운데) 등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6일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을 마친 후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우치 _ 연합뉴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죽음의 조’에서 벗어난 대표팀은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던 16강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었고,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혈전 끝에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이어 재치가 빛을 발한 에콰도르전을 기어코 승리로 장식하며 남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결승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16일 새벽,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이 열렸다. 대한민국은 대낮처럼 밝았다. 전국의 도심 광장과 주요 월드컵경기장은 ‘붉은 악마’들의 함성으로 뜨거웠다. 전 국민의 43%가 TV 앞에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막말과 망언으로 싸워왔던 정치권마저 하나로 뭉치게 했다. 대표팀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기에 아쉬운 역전패에도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정정용 감독(왼쪽)이 16일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 패한 뒤 이재익을 위로하고 있다. 우치 _ AP연합뉴스

폴란드에서 열린 축구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 정정용 감독과 이강인 등 선수들이 17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2017년 5월 출범한 ‘정정용호’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강인을 제외하면 알 만한 선수도 코치진도 없었다. 그들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선수권, 프랑스 툴롱컵, 미얀마 알파인컵 등을 거치면서 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는 단단한 ‘원팀’(One Team)이 되어갔다. 그리고 월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감동을 국민들에게 선물했다.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과 베스트 골에 빛나는 조영욱과 최준, 선방쇼를 펼친 이광연이라는 스타플레이어도 탄생시켰다. 원팀이 국민에게 준 선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어서 하는 청년들의 도전이 가져온 결과다. 그들은 자율 속에서도 규칙과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선수를 위로하고, 동료를 탓하는 대신 다독인다. 좌절하지 않고 두려움을 모르고 끊임없이 승리를 위해 두드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확인한 것이다. ‘멋지게 놀 줄 아는 그들’ 덕에 국민들은 지난 20여일간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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