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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이렇게 심장을 쫄깃하게 한 축구 경기는 지금까지 없었다. 36년 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멕시코에서 4강 신화를 쏘던 때도 이 정도로 승부가 극적이지는 않았다. 이날 최고의 패배자는 생중계를 보다 승부가 기울었다며 성급히 TV를 끈 시청자였다. 주인공은 당연히 젊은 태극전사들이다. 이강인, 오세훈 등은 더 이상 틀에 짜맞춘 전술로 무장한 ‘한국형’ 전사가 아니었다. 높은 수준의 기술에 창의력까지 장착한 ‘발칙한’ 전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승부의 또 다른 주역은 비디오판독(VAR·Video Assistant Referee)이었다. 

9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한국과 세네갈전의 경기. 연장 전반 조영욱이 역전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VAR은 고비 때마다 승부의 균형추를 바로잡았다. 후반 14분 이지솔이 상대 수비수에게 밀려 넘어진 것을 심판이 VAR로 확인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0여분 뒤에는 반대로 한국 수비수의 핸드볼 반칙을 잡아냈다. 이날 VAR은 모두 7번 가동됐는데, 심판이 손동작으로 사각형을 그리며 VAR을 선언한 뒤 TV 화면에 ‘check / possibly penalty(페널티킥 가능성)’라는 표시가 뜨면 모두가 가슴을 졸여야 했다. 특히 한국이 2 대 1로 뒤지던 후반 막판 세네갈이 골문에 추가로 넣은 골이 VAR로 취소되지 않았다면 승부는 진작 끝났을 것이다. VAR의 역할은 심판 판정을 돕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국제축구평의회는 이번 대회부터 페널티킥 키커가 공을 차기 전 골키퍼의 두 발이 모두 골라인에서 떨어질 경우 반칙으로 규정했는데, VAR은 어김없이 이를 잡아냈다. 후반 29분 이광연 골키퍼가 막은 세네갈 선수의 첫번째 페널티킥과 승부차기 때 오세훈의 첫번째 킥을 막아낸 세네갈 골키퍼의 선방이 모두 반칙으로 선언됐다.

당초 축구계 일각에서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VAR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VAR이 경기의 재미를 줄일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오히려 오심 논란을 잠재우고 ‘축구 정의’를 구현한다고 보는 게 옳다. 이제 축구 경기에 새로운 풍경이 추가됐다. 골을 먹었다고 마냥 실망하거나 반대로 골을 넣었다고 기뻐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VAR로 바로잡아야 할 곳이 어디 축구의 골뿐이랴.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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