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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는 불리한 이슈에 대처하는 공식이 있다. 처음엔 무조건 납작 엎드린다. 시간이 흐르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눈물로 호소한다. 그럼에도 이슈가 소멸하지 않으면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든다. ‘불순한 외부세력’이 개입해 ‘순진한 국민’을 ‘배후 조종’한다는 음모론이다. 새누리당이 세월호특별법 정국에서도 어김없이 공식을 밟아가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배후 조종 세력이 유족들에게 잘못된 논리를 입력시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다. 새누리당은 고장난 축음기라도 되나.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매번 철 지난 유행가를 틀어대나.

김 대표의 발언은 인간적 존엄을 지닌 개별 시민을 특정 세력의 조종 대상으로 바라보는 저열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5일간이나 곡기를 끊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배후세력에 조종당한 ‘마리오네트’가 된다.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농성하는 세월호 참사 가족,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해 단식하는 시민 수만명도 같은 처지로 전락한다. 집권여당 대표라는 이가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행동하는 시민들을 이렇게 싸잡아 모독해도 되는 건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세월호 가족의 마음에 상처 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 게 바로 며칠 전 아닌가. 김 대표는 세월호 가족과 시민 앞에 사과해야 옳다.

본인의 SNS에 유족들 배후론에 관한 글을 올려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출처 : 경향DB)


새누리당이 ‘세월호 배후론’을 꺼낸 까닭은 짐작할 만하다. 김영오씨가 단식을 중단한 만큼 이참에 세월호 가족을 몰아붙여 특별법 정국을 끝내겠다는 복안일 것이다. 또한 가족들에게 ‘색깔’을 덧칠함으로써 중도적 시민들이 등 돌리게 하기 위함일 테다.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집권당이 국민을 갈라놓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태도로는 세월호 가족과 면담을 이어간다 한들 어떠한 합의도 이뤄내기 어렵다. 대화 상대를 꼭두각시로 폄훼하면서 진정한 대화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세월호 가족을 고립시키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수준 낮은 책략으로는 정국을 돌파할 수 없다. ‘무늬만’ 특별법이 아닌,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드는 일만이 민생을 위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새누리당은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슬픔에 잠겨있는 세월호 가족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모욕은 말아야 한다. 그게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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