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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기자 칼럼]분리통치

opinionX 2012. 8. 22. 14:40
최민영 | 국제부

지난 5월 프랑스 대선 취재 당시 유권자들과의 인터뷰를 취재수첩에 받아적으면서 이해하는 데 애먹은 말이 있었다. 중도보수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중운동연합(UMP) 후보가 내건 ‘진짜 노동(le vrai travail)’ 슬로건에 대한 진보진영의 깊은 불쾌감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노동자를 어떻게 진짜와 가짜로 나눈다는 것인가? 노동자를 서로 대립시키겠다는 것인가? 사르코지는 재선 욕심에 눈이 멀어 사회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말을 되새김질한 뒤에 아찔함을 느꼈다. 한국 사회에 속한 이에게 그 같은 이분법은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가요 ‘단결투쟁가’는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라고 자부한다. 정부 공익광고는 국기 의례부터 축구 응원에까지 애국심의 진짜 가짜 감별을 시도한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적으로 선명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때로는 이익을 꾀하기 위해 구분짓기의 프레임을 쉽게 부리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차별을 통한 ‘분리통치’의 사회적 비용을 보여주는 사례가 러시아의 ‘푸시 라이엇’ 재판이다. 정교회 성당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에 반대하는 노래를 부른 여성 펑크 록그룹 멤버 3명에게 지난주 징역 2년형의 중형이 선고된 이후 러시아 사회는 두 쪽 날 듯 찬반논쟁을 벌이고 있다. “너무 민감한 소재라 식탁에서 말 꺼내기가 금기시되고, 논쟁이 일단 시작되면 친구들은 다시는 말섞지 않겠다며 자리를 뜬다”(파이낸셜타임스 20일자)고 할 정도다.


철창 안에 앉아 있는 러시아의 여성 펑크록그룹 ‘푸시라이엇’ 멤버들 (출처 :경향DB)

‘현대판 차르’ 푸틴이 보수진영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대신 개혁을 요구하는 자유민주진영을 탄압하는 분리통치를 편 탓이 크다. 지난해 말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위기에 처했던 푸틴 정권은 민주진영을 서방의 사주를 받은 사회혼란 조장세력으로 몰아붙였다. 푸시 라이엇의 배후에도 서방정부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한국에 ‘레드 콤플렉스’가 있듯이, 러시아에는 냉전시대의 흔적인 ‘서방 콤플렉스’가 있다.


푸틴은 시대에 뒤처진 ‘분리통치’를 지렛대로 집권 3기에 철권을 행사할 기세다. 하지만 그 이득을 누리는 것은 푸틴 정권뿐이다. 알렉세이 쿠드린 전 러시아 재무장관까지 “국가 이미지와 투자매력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국익을 걱정했다. 서방 같으면 훈방 정도로 끝날 경범죄를 2년형에 처한다면, 국가홍보에 수백만달러를 쏟아붓는데도 현대적이고 공정한 나라라는 인상을 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집권 초기임에도 지난 6개월간 전례없는 지지율 추락을 목도하고 있는 푸틴 정권은 야권 탄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른 장기적 사회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러시아 국민들이다. 정치를 개혁할 기회도, 통합된 사회를 가꿀 기회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프랑스의 그 유권자들은 이 같은 ‘분리통치’의 부작용을 알기에 경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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