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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2학년 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 40일째인 22일 병원에 실려갔다. 김씨의 혈압은 90/60, 혈당은 57-80, 체중은 47㎏으로 혈압·혈당·체중 모두 정상치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제대로 단식을 했으면 벌써 (병원에) 실려 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댔던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 말대로 됐다.

김씨가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해온 이유는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것이다. 다른 세월호 가족들처럼 김씨 역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진실을 은폐할 동기가 있다고 의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진상조사건, 특검이건 정부·여당의 입김에서 가급적 자유로운 인사들이 진실 규명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김씨 등이 주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야가 재합의한 방안대로 특검을 구성하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될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 특검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무수한 의혹과 의심이 뒤따를 것이다. 세월호 가족과 정부·여당 사이에 팬 불신의 골이 이렇게 깊다. 정부·여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정부·여당이 그렇게 만들었다. 유병언을 세월호 참사의 몸통이자 ‘절대악’으로 만든 검찰은 유씨가 사망한 지 40일이 넘도록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세월호가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기까지 유씨가 책임을 져야 할 어떤 일을 했는지 무엇 하나 뚜렷하게 밝혀진 게 없다.

전대미문의 사고 발생 직후 7시간 동안 대통령과 청와대가 시간대별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는지 아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인데, 정부·여당은 그에 관한 사항을 조사·수사 대상에서 한사코 배제하려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오른쪽)이 24일 오후 단식 농성 중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된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입원하고 있는 서울 용두동 동부병원 병실을 찾아 김씨의 손을 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여당 의원은 국회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가족을 ‘노숙자’로 비하하고, 호통친다. 여당은 ‘세월호 참사=교통사고’를 공식 입장으로 내세운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고, 자신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도 없는 정부·여당을 세월호 가족들이 신뢰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문제의 원인은 불신이다. 불신의 원인 제공자가 정부·여당이라면 해결 방법 역시 불신을 불식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진상조사위건 특검이건 가족들이 수용할 수 있는 조사·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어떤 조사·수사 결과가 나오건 가족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가족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로 진상조사위건 특검이건 구성하면 된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박 대통령은 면담을 요청하고 있는 김영오씨를 하루빨리 만나 열린 마음으로 대화해야 한다. 인간적 존중과 배려가 깔린 소통의 온기는 불신을 녹이는 첫걸음이다. 거창한 명분 따위는 다 제쳐두더라도, 세월호 참사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한 아버지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자유롭게 무리지어 오가는 청와대 앞길에서 김씨가 경찰에 가로막히는 풍경을 보는 건 대통령의 덕목 운운하기 앞서 인간적으로 민망한 일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가족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켜 제 뜻을 관철하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마무리되면, 세월호 가족의 목소리가 배제된 침묵의 시간이 오면 이 사회는 더 평화로워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했다. 사회적 분열의 치유와 통합, 평화는 배제와 억압, 강요된 침묵의 결과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는 의미로 읽힌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민통합을 내세웠다. 박 대통령의 ‘통합’은 어떤 것인가.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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