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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면서 독주하기? 상식을 벗어나는 표현이다. 중·장거리 육상경기를 보면 중심을 잃은 선수가 상대를 여유있게 앞서나가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선두 주자도 조금만 지치고 틈을 보이면 뒤로 밀려나게 마련이고, 그게 정상적인 레이스다. 그런데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이 한국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각종 인사실패로 휘청거리는 여권이 여전히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라.

각료 하나 제대로 임명하지 못하는 권부에선 ‘국가 대개조’를 하겠다고 으르렁댄다. 자기 몸도 못 가누는 집권 여당도 뜬금없는 ‘혁신포’를 연일 쏴댄다. 그럼에도 각종 여론조사 결과들과 추이를 살펴보면 여권 지지율은 분명히 반등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7·30 재·보궐선거도 여권에 유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비정상적인 독주는 어떻게 계속되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형편없는 경쟁자 덕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혼수상태 지경에서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독주’가 가능해졌다. 물론 야당 지도부에선 이런 비판에 억울해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니까 여기까지 끌고 왔다” “보수층이 많아서 그렇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등 김한길 공동대표 주변 인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정말 그런가. 7·30 재·보선 공천과정을 보자.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의 지분 챙기기 의혹으로 얼룩진 공천파동은 선거판을 어렵게 만들었다.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한 권은희 후보의 경우 권 후보 남편 부동산투기 의혹 등으로 야권 전반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다. ‘20년 우정을 갈라 놓았다’는 무리한 공천을 단행한 서울 동작을에선 후보도 못 내는 결과를 낳았다. 선거 전망은 어느새 ‘야권의 낙승’에서 ‘야권의 패배 가능성’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천막당사 앞에서 구호외치는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출처 : 경향DB)

그간의 실책들을 나열하면 끝이 없다. 지난해 8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야당이 얻어낸 것은 무엇인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 핵심 증인을 앞에 두고 기존 의혹들만 재탕·삼탕했다. “반드시 도입하겠다”던 특검은 또 어디로 갔는가. 헌정사를 뒤흔들 만한 이 사건은 야당의 무능함 속에 그렇게 묻혔다.

6·4 지방선거 때도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은 기초선거 무공천을 강조하면서 ‘약속 대 거짓’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대선공약인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파기한 ‘거짓세력’ 여권을 심판하자는 것이었지만, 선거에 불리할 것 같자 슬그머니 공천으로 회귀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가 풀이 죽어버린 경우다.

여당에서도 ‘야당 덕’을 인정한다. 6·4 지방선거 직전 여당 한 초선 의원에게 들은 말이 기억난다. “지금 야당이 DJ(김대중 전 대통령) 때 국민회의나 평민당 정도 야성이 있었으면 우리는 선거에서 전멸할 거야.” 수도권 다른 의원은 “야당이 정상이면 전국적으로 다 져야 해. 야당이 너무 못해서 할 만하다”고 했다. 7·30 재·보선을 앞둔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망했다”고 했던 여당 관계자들은 요즘은 “(야당이 헤매서) 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지방선거 직후 지인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여당은 못찍는다”며 야당에 투표했던 이들은 선거 이후 “야당이 크게 혼났어야 했는데…”라고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했다. 내용상 패배한 선거결과를 두고 “집권세력에 대한 경고”라고 자화자찬하는 야당 지도부 모습에 혀를 찼다.

현재 야권 모습으로는 앞으로 총선·대선 승리가 어렵고, 여권에 최소한의 제동을 걸 견제세력도 될 수 없으니 차라리 철저히 망하고 정신을 차려 새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이 그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용욱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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