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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수상하다 못해 부끄럽다.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에서 갑자기 대통령의 무능과 부패를 꾸짖는다. 특종 경쟁까지 점입가경이다. 낯설다. 좋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스스로 지금까지의 행태부터 반성해야 한다. TV조선에서 박근혜 불러놓고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운운하던 건 어쩌고. 반성이 없으니 기회주의로만 보인다. 그런 처신으로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 같지는 못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른 가장 큰 원인은 수구정치인들의 야합이다. 그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저지른 패악의 결과다. 해방 후 친일매국 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해서 악의 뿌리들이 카르텔을 형성했다. 지금의 참담한 상황은 그 유산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뿌리까지 들어내고 뽑아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축복인지도 모른다. 부역을 종결시킬 기회다. 역사는 그런 악의 뿌리가 3대를 가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양국충(楊國忠). 당 현종 때 양귀비의 육촌 오빠인 자다. 황제의 총애를 받은 누이를 업고 재상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술과 도박에 빠져 살던 무뢰배였다. 오죽하면 친척들까지 상종하지 않으려 했을까. 재상이 되자 천하의 일을 다 쥔 듯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국가의 중요한 일도 마음 내키는 대로였다. 공경대부들조차 턱짓과 표정으로 지휘했다. 무소불위 그 자체였다. 그의 손을 거치면 안 될 일이 되고 거치지 않으면 될 일도, 되어야 할 일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무려 40여 개의 직책을 겸임했다. 천하의 모든 관직을 양국충이 쥔 셈이다. 그쯤 되니 양(楊)가 성을 가진 자들치고 한 자리 차지하지 않은 자들이 없었다. 오죽하면 양씨 가문에서는 ‘닭이나 개조차 하늘로 날아오를 지경’이라고 했을까! 계견승천(鷄犬昇天)의 시대였다. 양국충을 추종하던 무리가 조정과 지방의 수령 자리를 차지했다.

그의 눈에 들면 권력의 공과 사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 끝내 ‘안사의 난’을 맞았다. 양국충은 패퇴하여 현종을 따라 도망가다가 격분한 장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나라와 백성을 망친 주범이라 여겨 격분하였기 때문이다. 그를 추종하던 자들 역시 파국을 피하지 못했다. 도승지 사고조차 미치지 못하는 전 비서실장은 코웃음을 쳤다. 봉건시대에도 없을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그러나 며칠 뒤 모든 일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대통령도 피해자라며 감싸는 발언도 했다. 여전히 정신 못 차렸다. 당 대표는 연설문 자문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자기도 연설 전 여기저기 물어본다고. 가벼운 자다. 주제넘은 옷을 입었다. 당 대표의 격이 아니다. 석고대죄해도 모자란 판에 변명과 침묵뿐이고 심지어 엉뚱하게 물귀신 버릇까지 어김없다.

‘시민의 삶’을 산 적 없고 스스로를 공주나 여왕쯤으로 여기는 사람을 지도자로 섬긴 자들이다. 실체를 이미지와 포장으로 차단했다. 물론 그 포장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도 ‘기꺼이’ 거기에 홀린 유권자들도 문제이긴 하다. 어떤 이는 말한다. 그 사람들하고 책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겹친다고. 공부하지 않고 분별하지 못했기에 그런 선전과 이미지에 스스로 속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그런 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줄 서고 아양 떨던 자들이다. 오죽하면 한 심리학자는 “극우보수와 최순실이 박근혜씨를 ‘사육’해 대통령으로 내세웠다”고 말할까. 이쯤이면 대통령의 자격도 능력도 정지된 것이다.

청와대 수석, 장관, 차관도 최순실에게 선을 대며 들락댔다.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관의 목도 날아가는 걸 봤다. 그 여인에 가까이 선 자까지 호가호위를 누렸다. 광고감독으로는 유능했을지 모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겁결에 닿은 줄이 청와대까지 쥐락펴락하는 비선 실세였다. 능력을 넘어선 탐욕으로 나라를 유린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그자의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었다. 능력도 자질도 없는 자가 이 나라 문화를 다 말아먹어도 비판은커녕 거기에 줄 댈 방법만 모색했다. 최순실과 차은택이 의지할 태산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태산이 아니라 얼음산일 뿐이었다. 해 나면 금세 녹을 뿐인.

대통령이 장관들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다. 그럴 거면 뭐하러 장관을 세웠을까. 게다가 여론을 무시하고 능욕하며 국민감정 짓뭉개고 앉힌 장관들이다. ‘베이비토크’의 어휘력과 문장력 때문이었다. 장관의 말을 알아들을 줄 모르고 해야 할 말도 모르니 안 만나는 게 상책이다.

장관 해 먹기 참 좋았을 것이다. 부르는 일 없으니 긴장할 것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이상한 정책 지시하면 그대로 아래에 전하면 그뿐이었을 테니. 그러면서 나라는 멍들고 썩어갔다. 조선시대 정쟁 심할 때조차 같은 붕당의 대신들마저 자기 부서를 위해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 내각을 차지한 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들끼리는 신났다.

최순실이 진짜 실세임을 재빨리 안 자들은 거기에 줄 대는 일에만 몰두했다. 경제가 무너지고 청년들이 절망해도 남의 일이었다. 관리들은 그녀의 눈치 보기 바빴고 그녀 주변의 쓰레기들은 돈 쓸어 담을 일에만 몰두했다. 언론도 거들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발 잽싸게 빼는 기회주의에 편승하고 있다.

문장 하나 제 능력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대통령. 애당초 깜이 아니었다. 닭은 날지 못한다. 물론 급하면 퇴화한 날개로 짧게는 난다. 주변에서 그 닭에 봉황과 공작의 깃털을 붙였다. 닭은 스스로 봉황이라 여겼지만 추종세력은 실체를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입 다물었을 뿐이다. 퇴행과 퇴화의 결정판이다. 그게 하필 지금, 가장 어려운 때 벌어졌으니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그런데 진행되는 꼴은 거의 희극 수준이다. 온갖 양아치들이 득시글대며 부나비처럼 권력을 농단했다. 그 실체가 이제야 드러났다. 그러자 뜬금없이 개헌 카드로 덮으려 했지만 용감한 한 언론의 폭로로 그 암수는 금세 무산되었다. 그걸로 이미 끝났다. 그런데 아직도 봉황이라고 착각한다. 엉뚱하게도 오동나무 위에는 온갖 새들의 깃으로 위장한 칠면조가 봉황으로 여기며 앉았다. 그 칠면조가 돌아왔다. 닭과 칠면조가 세상을 능멸했다.

젊은 철학자 임건순은 우리의 비극은 바로 ‘못 배운 사람들의 맹신과 배운 놈들의 부역’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책도 읽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는 지도자, 그 지도자와 똑같은 유권자. 그게 우리 비극의 근인(根因)이다. 정신 차리고 공부해야 한다.

부역자들을 반드시 밝혀내고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래야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반민특위의 무산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지금 반드시 그들을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 ‘닭이나 개조차 하늘로 날아오를 지경’을 끝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바로 선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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