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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겨울도 아닌 몇 밤이 지나면, ‘4월’이다. 어느 시인의 ‘잔인한 달’은 동시에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T S 엘리엇 <황무지>) 시간이다. 어느새 공기는 노르스름 밝아지고, 콧가엔 푸릇한 내음이 감돈다.

1년 전 4월은 ‘잔인’했다.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집단적 자괴감에 봄날은 ‘얼음감옥’이었다. 하지만 공감은 짧고, 망각은 빠르다. 서울 강남의 한 개인병원장은 “온기가 식으면 생명은 죽은 것이다. 온정이 사라진 사회는 죽은 자들의 사회다. 그만 됐으니 잊자고 하는 정말 잔인한 사회”라고 탄식했다.

정치권에서 요즘 가장 ‘핫’한 상품은 ‘통합’이다. 1년 가까이 ‘잔인한 봄’을 이어가는 자화상처럼, 진영·지역·세대로 갈라진 한국사회가 한계에 달했다는 진단과 함께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며칠 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참배의 정치학’에 깃든 명분은 국민 통합이다.

이처럼 ‘통합’은 여야 잠룡들이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트렌드가 됐다. 속내는 중도를 겨냥한 정치전술일 테지만, 정치뉴스 화면엔 연일 그들이 연출하는 통합 CF들로 넘쳐난다. ‘정치 쇼’ 논란부터 내부 갈등까지 논쟁은 여러 갈래고 국민과 지지층이 느끼는 감정도 갖가지 무늬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의 실험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 소위 ‘박근혜 복지법(사회보장기본법)’ 이야기를 꺼낸 때가 딱 이맘때다. 이명박 정부가 3년차로 접어들고, 세종시 수정을 놓고 현재·미래 권력이 불화하던 2010년 그 봄이다. 시대정신으로 ‘복지 박근혜’를 대중의 뇌리에 주입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해 말 ‘박근혜 의원’의 14년 의정생활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던 법안 공청회에는 국회의장 등 400여명이 몰렸다.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다”는 말들이 나왔다. 여야 잠룡 1위인 문재인·김무성의 통합 실험에 예사롭지 않은 정치적 의미가 따라붙는 이유다.

‘시대정신’은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래권력의 화두다. 큰 꿈을 꾸는 정치인 입장에서 시대정신은 대선과 직결된다. 그것도 대선 승부를 결정지을 ‘최종 병기’가 될 수 있느냐다. 결과적으로 여야 주자들이 2017년 대선의 ‘그것’으로 통합을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 선택이 옳았느냐는 마지막 성적표로 증명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분향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통합이 시대정신으로 무거워진 것은 어떤 염려들이 넓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 프리즘에선 기준은 좌·우가 아니다. ‘극단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지루한 종북 논쟁과 일베의 망동들이 끌어낸 현상이기도 하다. 통합 실험의 내용물이 ‘중도화’처럼 비치는 이유다.

실상 ‘극단’은 갈등을 양분으로 자라는 독버섯들이다. 일베와 김기종은 거울 속 서로의 모습처럼 정반대이면서 닮은꼴이다. 정확히 대칭되는 ‘데칼코마니의 얼굴’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이제 물밑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관종(관심종자)들의 사회상’이다. 한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임계점에 이른 상징이다.

그렇다고 ‘중도’라는 것이 ‘좌도 우도 아니다’가 정답은 아니다. ‘가치’는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이들의 결속을 만드는 거멀못과 같다. 가치를 잃은 정당은 더 이상 정당이 아니다. 앙꼬 없는 찐빵은 아무리 싸도 팔리지 않는 밀가루 덩이일 뿐이다.

통합의 정수는 결국 ‘포용’일 것이다.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라고도 하지만, ‘포용 능력’이 차이를 공존하게 만든다. 메마른 가지엔 바람도 머물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의 ‘포용 능력’은 왜 사라져 갔을까. 정치든, 경제든, 개인 삶이든 경쟁을 경쟁이 아닌 전투로, 죽기 살기식 이분법으로 달려온 메마른 문화가 원인일 것이다. 목숨 건 전투에선 살상력이 큰 무기일수록 대접 받는다. 극단의 언어는 작아도, 그것이 주는 감각적 미혹과 카타르시스 때문에 강한 반응성을 지닌다. 한 줌 되지 않는 극단이 점점 소음화하고, 대접받는 악순환의 원인이다.

통합은 익숙함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포용은 곧 내면 한쪽에 다른 것,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공간을 마련하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복지=낭비’라는 익숙한 진영논리에 안주하고, 좁은 경험에 의지해 ‘개천의 용’ 같은 옛노래나 틀어대는 어느 도백(道伯)처럼 선입견에 찬 빈곤한 지성으론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경험이란 족쇄를 털어버릴 때 ‘통합’을 향한 조그만 싹이 튼다. 그런 민초들 하나하나의 ‘마음 바꿈’이 홀씨가 돼 봄바람을 타고 퍼져나갈 때 통합의 ‘민들레’는 방방곡곡에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통합은 결국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김광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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