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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갑시다.” 그 말이 마음을 물들였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이 말에 당혹스러워하고 미안해하던 한국인들은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이 ‘같이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세계를 나는 보았다. 작년 1월 캄보디아에서의 일이다.

쇼킹한 뉴스였다. 한국 의류업체 공장 앞에 군인들이 배치됐다. 프놈펜의 공단에서 그후 벌어진 일련의 시위에서 군경이 노동자들에게 발포해 5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그 사건을 들여다보던 나는 우려할 만한 사실들을 알아냈다. 프놈펜 한국 대사관이 공개 성명을 통해, 한국 공장 앞 시위를 멈추게 해달라고 캄보디아 반테러위원회 관리에게 로비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었다. 의류회사 측은 자기네 직원이 인근 군부대에 보호를 요청했다고 내게 털어놨다. 그런데 한국 대사관 관리들은 윤리적 측면에서는 별로 당혹감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왜 현지인들이 폭력사태를 규탄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에는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말만 했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기업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이런 무모하고 부주의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시민의 가치와 법치, 인간의 존엄성을 외교정책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는 뒤틀린 사대주의다.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은 약한 나라들을 쉽게 여기는 게 버릇이 돼 있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나왔다. 책에서 그는 집권 시절의 치적으로 내세워왔던 외교정책, 이른바 ‘자원 외교’를 맹렬히 옹호했다. LMB(이명박)는 자원 없는 한국이 자원 외교 덕에 일본이나 중국, 인도처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LMB 시절이나 지금이나, 한국 정부·기업이 연루된 일들은 해외에서 벌어진 ‘작은 부패’라고만 보기 힘들다.

2000년대 말 LMB는 캄보디아 독재자 훈센의 명예 경제자문을 맡았다. 그러니 한국 기업들이 열악한 기업관리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케너텍이라는 회사는 캄보디아 군과의 커넥션에 힘입어 대규모 광산채굴권을 따냈으며 현지의 한 업체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2012년 현지 시민단체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그 현지 업체는 전직 장성과 연결돼 있었고, 이 장성은 케너텍과 합작사업을 할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냈다. 그후 케너텍 한국 본사는 뇌물 스캔들에 휘말렸고 2010년 부도가 났다. 마을 주민들은 끝내 땅을 돌려받지 못했다. 또 다른 회사 MH에탄올은 식용작물인 카사바 농장과 바이오연료 공장을 지었는데, 이때도 캄보디아 군인들이 주민들을 쫓아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사업은 중단됐다.

한국수자원공사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외교관들은 한국수자원공사가 태국에서 61억달러 규모의 물관리(홍수예방) 사업권을 따낼 수 있게 하기 위해 몇년간 공을 들였다. 그러나 2013년 태국 행정법원은 한국수자원공사의 사업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는데다 환경파괴 우려가 있다며 보류시켰다. 현지 활동가들은 의회에서 LMB의 재앙에 가까운 4대강 사업을 우려의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태국 활동가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으나, 그런 소송으로 매력적인 민주국가이자 ‘한류’의 중심지인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납득시키기는 힘들다. 한국이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자신들의 성공을 본받으려 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이것이 바로 사대주의의 함정이다.

부실·비리 의혹 받는 공기업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적극 나섰지만 부실 및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신대방동의 한국광물자원공사 본사(왼쪽)와 울산 우정동의 한국석유공사 본사 _ 연합뉴스


과거에는 사대주의가 유용한 도구였다. 한국인들은 강대국을 바라보며 발전의 비전을 얻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 모두 가난한 나라에서 출발해 더 번영한 나라의 성공을 따라 배웠다. 세계 무대의 강자가 된 뒤 이들 나라 시민들은 자국의 이름으로 벌어진 악행들을 직시해야 했다. 미국인들에게는 베트남과 이라크,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이 있었고, 유럽인들에게는 아프리카·아시아에서의 식민주의 과거가 있었다.

한국의 사대주의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고, 서방이나 일본이 아닌 지역과의 외교 정책이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19세기 영국 소설가 윌리엄 새커리는 소설 <허영의 시장>에서 ‘네 머리 위에 있는 자의 신발을 핥지 말고, 네 아래 있는 자의 얼굴을 발로 차지 말라’라고 썼다. 한국은 더 이상 위만 바라보지 말고 아래를 봐야 한다.


제프리 케인 | 글로벌포스트 한국 수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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