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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규항

ㆍ“신자유주의 속 소수 인디음악… 그래도 난 즐기고 극복을 고민한다”

근래 유행하는 ‘멘붕’(멘털붕괴·정신적 공항상태를 일컫는 인터넷 유행어)이라는 말은 먼저 유행한 ‘멘토’의 이면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길을 찾기를 두려워하며 나 대신 생각해주고 나 대신 길을 찾아줄 어떤 강력한 대상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선택한 대상을 기준으로 모든 가치를 재조정한다. ‘빠’와 ‘까’의 범람 속에서 한국은 더 빠르게 멘붕 중이다. 기타리스트 윤병주는 자신의 말마따나 사회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특별한 저항이나 실천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단지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꽤나 보기 드문 사람이다.

 

사진 _ 김창길 기자cut@kyunghyang.com

▲ 관객 다섯 명 앞에 두고 공연하고도
“오늘 죽였다”고 말할 수 있는 그.
그의 삶이 ‘반MB’를 외치지만
삶 속에 마주치는 ‘MB스러운’ 상황은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김규항 = 록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했습니까.

윤병주 = 어머니가 늘 AFKN 라디오를 틀어놓으셔서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듣게 되었죠. 어머니와 펜팔 친구이던 와국 분이 추천한 록 음반을 어머니가 구입하시면 제가 더 많이 듣게 되었고요(웃음). 중학교 졸업 즈음에 첫 기타가 생겼습니다.

김규항 = 노이즈가든은 PC통신 동호회가 모태가 된 걸로 압니다.

윤병주 = ‘하이텔 메탈동호회’인데 메탈동이라 부르곤 했습니다. 외국에서 새 음반이 나오거나 아티스트가 나오면 들어보고 감상문을 올리는 게 주된 활동이었습니다. 그러다 사하라, 블랙신드롬 같은 메탈 하던 형들을 알게 되고 해서 메탈동에서 만난 친구들과 92년에 노이즈가든을 만들었죠. 저희가 일종의 계기가 되어서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같은 밴드들이 만들어졌죠.

김규항 = 노이즈가든은 94년 톰보이 록페스티벌에서 대상을 타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습니다.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도 말씀하셨는데 프랑스 뉴웨이브 감독들이 생각납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가 직접 영화를 만들게 된 사람들 말입니다.

윤병주 = 꽤나 진지하고 탐구적이었어요. 정말 진지하게 듣고 진지하게 썼거든요. 요즘엔 그런 록 마니아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한 번 들어서 자기 취향이면 좋아하고 아니면 관심 없고 식이죠.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김규항 = 현재의 로다운30은 3인조 록밴드입니다. 크림이 효시던가요.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최소한의 편성은 그 간결함만큼이나 각 파트의 강력한 사운드를 내는 편성이기도 하죠.

윤병주 = 저 역시 그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3인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김규항 = 로다운30을 흔히 블루스록 밴드라고 합니다. 블루스를 한다는 뜻인가요. 블루스가 기반이 된 1960, 1970년대 록을 한다는 뜻인가요.

윤병주 = 후자에 가깝습니다. 1980년대 이후엔 블루스에 그다지 영향받지 않은 록음악들도 많지 않습니까. 펑크부터 1980년대 뉴웨이브, 1990년대 브릿팝, 얼터너티브 등. 그런데 로다운은 무슨 음악을 하는 밴드다라는 규정이 불편할 때가 많아요. 평론이나 매체에서 저희를 소개할 때도 저희 스스로 다 적어주길 원해요. 우리 음악은 무엇이고 음악 특징은 무엇이고 각 곡의 해설 이런 걸 써내야 해요. 방송에 나간다고 해도 첫 질문이 ‘로다운은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입니까’. 그럼 저는 그것도 모르면서 왜 불렀을까 싶죠. 그런 풍조에 동의하기도 어렵고 이번 앨범은 아예 보도자료를 안 썼어요.

김규항 = 요즘 음악 평론에는 음악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병주 =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아쉬운 게 그겁니다. 음악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제 음악이 나타내고 싶었던 걸 누군가 알아채 주고 반응을 보여주는 교감의 순간이거든요. 호평인가 혹평인가는 상관없어요. 그런데 그런 건 없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많아요. 이를테면 최근 어느 밴드에 대한 글에 그런 구절이 있더군요. ‘기청감이 재현성이 떨어지는’ ‘역린을 거스르지 않는 기괴함’.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야 했어요. 물론 그런 알쏭달쏭한 표현도 있을 수 있고 음악에 별점 매기고 재치 있고 톡톡 튀는 40자평도 다 좋은데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음악적인 소개부터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올뮤직(세계적 음악 정보·평론 사이트)을 보면 시밀러 아티스트, 인풀루언스드 바이 하는 식으로 계통부터 잡아가며 소개하거든요. 그런 건 없이 ‘일기장을 꺼내 읽는 것 같은’ ‘소소한 일상의 투명하늘 같은’ 이런 건 어떤 음악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웃음).

김규항 = 선생은 인디신이나 인디밴드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활동했지만 여하튼 인디 1세대 뮤지션이기도 하죠. 한국에서 인디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는데 주류음악산업에서 독립적이라는 원래 뜻도 있는가 하면 주류 산업에서 픽업되길 바라는 아마추어들도 인디라 불립니다. 여하튼 한국의 인디는 그런 건데 근래 인디 뮤지션들의 생존권 관련한 논의들이 있습니다.

윤병주 =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쪽에선 나이가 있는 축에 속하다보니 그런 문제는 말하기 조심스러운데요. 그런 논의들을 존중하면서 다른 측면의 문제도 함께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인디뮤지션이 음악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이 69만원이다,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과연 69만원을 벌 만한 음악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김규항 = 구조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인데요.

윤병주 = 그런데 구조라는 게 찬찬히 따라올라가다 보면 결국 음악을 듣고 소비하는 대중에게까지 가게 됩니다. 대중의 추세가 어떤가를 봐야겠죠. 뭔가 조금이라도 낯선 음악을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없다고 할까요. 미국 TV의 <데이비드 레터맨쇼> 같은 데서 레이디 가가 나온 다음에 스트록스가 나왔다 혹은 마돈나 다음에 RATM(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이 나왔다 해도 별 위화감이 없이 갑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소녀시대 다음에 인디밴드가 나왔다 그럼 굉장히 위화감이 있겠지요. 그게 현실이고 그런 현실을 바꾸지 않고 인디의 생존권을 소리 높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요.

김규항 = 부당하든 정당하든 현실에서 출발해야겠지요. 선생은 경제 문제를 따로 해결해왔습니다.

윤병주 = 음악으로 돈을 못 벌어서 다른 돈 버는 일을 한다고 보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 돈 버는 다른 일을 만든 거거든요. 제가 정말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음악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김규항 = 일상에 음악이 얼마나 스며들어 있습니까.

윤병주 = 늘 오늘은 뭘 들을까, 무슨 시디를 구입할까 생각하고 들어보고 기대에 못미친다, 생각보다 좋았다는 희비가 교차되고 따라 연주해보고 곡 만들고 조용한 데 혼자 있으면 가사 쓰고 그러죠. 음악을 열심히 하다가 미래가 안 보이고 돈도 안 벌리고 해서 그만두고 떠났다가 오랜만에 만나선 ‘너 그런 거 지금도 하느냐’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이 과연 음악을 좋아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규항 = 한음파처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있지요.

윤병주 =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은 돈 생각은 안 하거든요. 음악을 안 하고는 살 수 없어서 하는 거니까요. 내가 이 고생을 하면서 라면 먹고 고작 몇 만원 받고 음악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미 음악이 좋아서 하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이런 말이 인디음악인들의 권리 투쟁을 하는 분들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고 또 성공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패배자의 말처럼 들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추구하는 음악과 현재 대중의 상태를 놓고 볼 때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판단을 한 거거든요. 패배도 포기도 아닌 현실을 정확히 보려는 거죠.

김규항 = 그렇다고 로다운30의 음악이 전위적이거나 고의적으로 대중을 불편하게 하는 음악은 아니잖아요. 구성도 멜로디도 오히려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에서 최선의 대중적인 음악을 한다고 할까요. 하지만 음악 창작이라는 게 여느 노동처럼 노동시간으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 어려운 상황을 맞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야겠지요. 대중의 음악 취향이 건강하지 못하고 왜곡되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건강하지 못하고 왜곡된 취향도 결국 취향이죠.

윤병주 =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이 자존심이니까 음악에 좀 더 철저했으면 해요. 인디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최소한 TV에서 소녀시대나 투애니원 다음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퀄리티를 갖도록 해야죠. 음악이라는 게 일정한 레벨에 오르면 그 다음엔 음악적 차이가 되거든요.

김규항 = 돈이 되는가 안되는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죠. 퀄리티 이야기를 했는데 선생에 대해 말할 때 묵직하고 깊이 있는 기타 톤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브에서 더욱 차이를 보인다고들 하지요.

윤병주 = 고마운 말인데 사실 자기 기타 톤을 갖고 있는 건 칭찬받을 문제가 아니라 기타리스트의 최소한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기타리스트는 자기 손이 가장 기본이잖아요. 누구나 원하는 소리가 있겠지요.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소리를 내기 위해 손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을 완벽하게 추구해 놓는 거죠. 그 다음에 장비나 이펙터입니다. 몸이 안되는 모델을 의상으로 해결할 순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김규항 = 홍대 지역이 인디예술가들의 창의적인 공간에서 급속하게 상업주의적인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윤병주 = 요즘 같은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런 변화는 반갑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집주인들이 예술가들의 후원자로 나선 게 아닌 다음에야 세 안 올리기를 요구할 순 없을 일이고요. 홍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분위기가 바뀌는 정도를 넘어 생존 자체가 무너지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 노이즈가든은 몇 만장이 팔리는 밴드였지만 로다운30은 고작 몇 백장이 팔리는 밴드입니다. 그런 차이가 주는 심리적 불편함은 없습니까.

윤병주 = 대중의 기호나 추세를 알고 있고 제가 선택한 일이니 불편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다섯 명의 관객 가지고 공연하고도 교감이 있었다면 ‘오늘 죽였다’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 같이 손 머리 위로’ ‘다 같이 점프’ 외치는 밴드는 관객이 다섯 명이면 많이 힘들겠죠. 결국 자기 선택의 문제 아닐까요.

김규항 = 종종 구조보다는 개인의 태도나 선택을 중시한다는 오해를 받을 것도 같습니다.

윤병주 = 구조에 대해 말하는 게 중요한데 그 방식이 좀 공허하다고 할까요. MB를 욕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요. MB가 벌이는 부조리한 일들의 작은 버전이랄까, 직접 내 삶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훨씬 조심스럽고 비굴한 경우를 많이 봐요. 자기가 직접 손해 볼 수 있는 일이라 그렇겠지요. 결국 그런 상태에서 외치는 MB 아웃은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겠죠. 저는 그런 작은 버전들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좍 되어서 위에까지 올라가는 거지, 그런 게 안되어 있는데 구조만 탓한다고 좋은 정치나 좋은 예술적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김규항 =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표현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 윤리의 문제로 돌린다고도 하던데 제 의도는 사회구조와 사회성원은 서로 반영되는 유기적 구조라는 것이지요. 나쁜 사회구조는 사회성원들을 나쁘게 만들고 나빠진 사회성원들은 다시 나쁜 사회구조를 만들어내죠. 그런 면에서 갈수록 누구도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은 참 아쉬운 일입니다. 실컷 욕하고 조롱할 수 있는 이명박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죠.

윤병주 = 이명박 뽑은 놈들 누구야 난 안 뽑았는데, 그런 건 성숙한 태도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뽑은 이명박’이라고 해야 해요. 사회 다수면 결국 우리 아닌가요. 지금이야 노무현 생각하면 눈물 난다고 하지만 그땐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라고들 했죠. 이명박이 구리다는 건 다 아는데 그렇다면 대안은 뭐냐는 거죠. 노무현 다시 오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데 그쪽이 집권해서 또 불만스러우면 이번엔 또 누가 오면 된다고 말할까요.

김규항 = 전에 어느 평론가가 선생이 ‘신자유주의자 놈’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며 재미있어 하더군요(웃음).

윤병주 = 사실 저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지도 않고, 이 좌판에 앞서 등장한 분들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저를 희생하지도 않고 그저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삶들을 쉽게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러나 그게 우리 삶의 전부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거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 옛날에 ‘월간팝송’인가에서 ‘마흔 넘어서도 건재한 밴드 롤링스톤즈’ 운운하는 기사를 본 기억납니다. 마흔이 넘었습니다. 스스로 어떻습니까.

윤병주 =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고 곡을 만들고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럽고 저 자신에게 자랑스럽습니다. 음악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창의적 힘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그만두어야겠지요. 그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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