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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다가서기로 다짐한 삶입니다. 미끄러운 길 간신히 기어 올라보니 숨은 그림 하나가 있습니다. 이끼와 바위의 색깔을 두둘두둘 몸에 두른 무당개구리가 폭염을 피해 폭포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보호색이라면 이 동네 뱀과 새의 눈을 피하기 너끈하겠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먹고 먹히는 치열한 싸움이 쉼 없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강자는 이미 강자이고 약자는 어쩔 수 없이 약자입니다. 그렇지만 강자라 하여 영원히 강자일 수 없으며, 약자라 하여 언제나 약자는 아닌 것이 동물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승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결국 살아남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두둘두둘한 몸에 이끼와 바위의 색깔을 알맞게 두른 무당개구리가 폭포를 바라보고 있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규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 중 위장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위장술이 뛰어난 친구들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동물이 선택하는 위장법 중 가장 기본은 보호색입니다. 주로 잡아먹히는 입장에 있는 동물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몸 색깔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보호색입니다. 사막에 사는 동물들은 대부분 모래 색깔을 닮은 갈색이고, 북극에 사는 동물들은 순백색의 깃털이나 털가죽으로 덮여 있습니다. 물속의 동물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면에 가깝게 사는 물고기들의 은빛 비늘은 물빛과 비슷해 새들의 눈을 피합니다. 산호초 사이의 물고기들은 산호의 화려한 색깔에 맞추고, 바다 밑바닥에 사는 가자미와 넙치는 모래나 펄의 색과 같으며, 심해에 사는 물고기들은 몸 색깔이 어둡습니다. 고등어와 꽁치처럼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물고기들의 경우 등 쪽은 물색을 닮은 짙은 푸른색이고, 배 쪽은 바다 밑에서 올려다본 반짝이는 수면처럼 은백색입니다. 위와 아래의 천적을 모두 고려한 보호색입니다.

포유류 가운데는 얼룩무늬나 줄무늬의 가죽으로 덮여 있는 종류가 많습니다. 얼룩무늬나 줄무늬는 밝은색 부분이 강렬하게 대상의 시선을 끌어당겨 몸 전체의 형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보호색은 일종의 교란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포식자가 가장 싫어하는 색깔을 띠어 자신을 지키는 경우도 많은데, 이러한 보호색은 경계색이라 부릅니다. 그렇다고 보호색이 주로 먹히는 생태적 위치에 있는 친구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포식자 또한 피식자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먹잇감의 획득에 유리하므로 보호색을 갖춥니다.

보호색은 타고난 채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위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보호색을 통한 위장술의 대가는 역시 카멜레온입니다. 카멜레온은 사는 장소에 따라 몸의 색깔을 그때그때 바꿀 수 있습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녹색을 띠며 나뭇가지에 천연덕스럽게 매달려 있습니다. 천적인 새들이 옆에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나뭇잎과 똑같은 색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사막 같은 곳에서는 모래 배경과 아주 잘 섞인 갈색으로 변장할 수 있습니다. 문어 또한 바다의 카멜레온으로도 불릴 만큼 보호색의 연출이 뛰어납니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몸 표면에 분포한 색소 세포가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수시로 몸 색깔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보호색이 언제나 방어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격의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꽃게는 오징어가 무척 좋아하는 먹잇감이지만 꽃게의 강력한 집게 때문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자신의 다리를 순식간에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오징어는 보호색을 이용합니다. 꽃게 눈앞에서 몸 색깔을 다채롭게 바꾸면 꽃게는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꽃게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오징어의 두 다리에 꼼짝없이 잡혀버린 다음이 됩니다.

동물이 취하는 위장술에는 보호색 말고도 의태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위의 물체나 다른 동물과 아주 비슷한 모양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꼭 닮은 대벌레, 작은 돌과 비슷한 메뚜기, 해조류의 모습과 흡사한 해마 등이 유명한 예입니다. 실제로 자신은 그렇지 않지만 독침, 악취, 특별한 무기 등을 갖춘 다른 동물과 흡사한 모양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새의 배설물 모양을 닮은 생명체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의태를 통한 위장술의 진수는 가짜 눈을 이용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먹잇감을 잡을 때 머리 쪽을 공격합니다. 정면에서 공격하면 먹잇감이 도망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단번에 공격해서 숨을 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피하고자 곤충 중에는 큰 눈동자 모양을 꼬리에 새겨 꼬리를 머리처럼 보이게 할 때가 많습니다. 공격을 당해 꼬리가 좀 뜯겨나가더라도 목숨은 건지겠다는 전략입니다. 애벌레의 경우 자신의 천적인 작은 새를 잡아먹는 매와 부엉이를 비롯한 맹금류의 눈 무늬를 등 쪽에 떡하니 그려 넣기도 합니다.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펼치는 전략은 동물의 종수만큼이라 다채롭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떠올려본 것이지만 생각은 나 자신으로 돌아와 멈춥니다. 나 역시 살아남아야 하겠는데, 어떠한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나무늘보의 방법을 따르기로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라질까를 고민하는 세상이니 어떻게 하면 더 느려질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것도 길이겠다 싶습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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