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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월남 이상재는 YMCA 강당에서 강연을 할 때면 먼저 뒤쪽 임석경관석을 흘깃 쳐다보고선 “저기 개나리꽃이 피었군”이라는 말로 시작하곤 했다. 그러면 만장은 폭소로 뒤덮였으나, 일본인 경관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경찰은 2인칭으로 ‘나리’, 3인칭으로는 ‘왜놈의 개’였다. 이상재는 2인칭과 3인칭을 하나로 묶었을 뿐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중세는 신분제 시대였으나, 한국인의 언어는 유독 신분을 심하게 따졌다. 한국인의 일상 언어생활은 가까운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조차 없는 ‘차별적 언어’가 지배했다. 화자와 청자의 위계에 따라 단어를 바꿔 쓰는 문화가 한국보다 더 발달한 나라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영어로는 ‘do’ 하나뿐인 것을 한국어로는 ‘하오’ ‘하시오’ ‘하십시오’ ‘하게’ ‘해라’로 나눠 써야 했다. 여기에 임금에게나 쓰는 ‘하시옵소서’와 아직 어미 활용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반말 ‘해’가 추가되어 총 7등급의 활용법이 있었다. ‘잘 자라’와 ‘안녕히 주무십시오’, ‘물어봄세’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는 완전히 같은 뜻이지만 결코 화자와 청자가 바뀌어서는 안되는 말들이었다. 서술어뿐 아니라 때로는 목적어까지 바꿔야 했다. ‘밥 먹어라’ ‘수저를 들게’ ‘진지 잡수십시오’ ‘수라를 젓수시옵소서’ 등등.

서술어와 목적어를 가려 쓰기가 이토록 어려웠는데, 주어를 선택하기가 쉬울 리 없었다. 순우리말 1인칭은 ‘나’와 ‘저’뿐이지만, 흔히는 ‘본관’ ‘본인’ ‘소신’ ‘소인(=쇤네)’ ‘이놈’ 등을 썼다. 2인칭은 더 복잡했다. 같은 또래의 친척이나 친구, 아랫사람에게는 ‘너’ ‘자네’ ‘그대’ ‘이 녀석’ ‘야’ ‘이놈’ 등을 쓰거나 이름을 불렀으나 윗사람이나 격식을 갖춰 대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신분에 맞는’ 2인칭을 썼다. ‘마마’ ‘마님’ ‘영감님’ ‘나리’ ‘서방님’ ‘도련님’ ‘아씨’ ‘부인’ 등. 낯선 이를 부를 때에는 2인칭을 생략한 채 ‘이보시오’ ‘이보게(=여보)’ 같은 말머리를 달거나 ‘어르신’ ‘젊은이’ 등 나이로 어림잡아 관계를 설정했다.        

‘남이 안 보는 데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는 말대로, 3인칭은 제 맘대로 쓸 수 있었으나, 개화기에 발행된 한글 신문들에서는 지체가 높은 사람의 경우 이름 뒤에 ‘씨’를 붙였고, 보통 사람의 경우 이름만 썼다. ‘총리대신 한규설씨’ ‘낙동 사는 김막동이’ 등.

윤치호, 최남선, 오세창 등이 1918년에 조직한 계몽운동 단체 계명구락부는 1921년 5월28일 총회에서 ‘제2인 대명사 칭어(稱語)’로 ‘당신’을 사용하기로 결의했다. 2인칭 대명사가 너무 많은 것은 신분제 사회의 잔재로 사민평등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아나타’라고 부르며, 일본인을 부를 때나 조선인을 부를 때나 가리지 않고 ‘상’을 붙이는 일본 언어문화에서 영향 받은 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 알다시피 이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아주 높은’ 사람을 3인칭으로 부를 때 쓰던 ‘당신’은, 부부 사이에서만 평어(平語)로 정착했다. 요즘 낯선 사람에게 2인칭 ‘당신’을 쓰는 것은 싸우자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듣는 이의 맘에 들지 않는 2인칭 대명사로 인한 싸움은 흔한 일이었다. 1934년 서울 당주동에서는 양반가 후예인 한 젊은이가 나이 많은 물장수를 ‘여보게’라고 불렀다가 물장수 조합원들에게 집단 구타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뒤탈을 없애려면 높여 부르는 편이 나았다. 해방 이후 미국 문화가 들어왔고, 전쟁을 겪으면서 양반 상놈을 따지던 관행도 급속히 소멸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평등사상도 호칭의 위계를 조금 단순화했을 뿐 아예 부수지는 못했다. 친한 사이에는 서로 이름을 부르고, 공과 사가 뒤섞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성 뒤에 ‘형(兄)’을 붙이며, 공적으로만 관계 맺는 사람에게는 ‘미스터’ ‘미스’ ‘미세스’ 등을 성 앞에 붙이는 관행이 오래 지속되었다. 을이 갑을 부를 때에는 직함 뒤에 ‘님’을 붙이고, 갑이 을을 부를 때에는 성 뒤에 ‘씨’를 붙이는 것도 일반적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일단 ‘사장님’이나 ‘선생님’으로 부르는 편이 안전했다. 그리고 어느새 ‘씨’나 ‘미스터’ 등 본디 상대방을 ‘존대’하는 의미로 쓰던 말들이 ‘하대’로 바뀌었다. 너무 흔해서인지 듣는 사람이 과분하게 느껴서인지는 알 수 없으니, 근자에는 ‘사장님’이나 ‘사모님’ 사용이 줄어든 대신 ‘고객님’이라는 해괴한 말이 일반화했다. ‘고객님’은 종업원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흔히들 ‘여기요’라고 하거나 이모, 언니 등 제 맘대로 친척 관계를 만들어버린다.

최근 일각에서 벌어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냐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냐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 부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여사’에 상응하는 남성형은 뭔가?

때마침 어떤 기업에서 상대방을 직함으로 부르는 대신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님’은 임금님에서 서방님, 도련님에 이르기까지 극존대와 존대를 아우르는 의존명사다. 또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2인칭 대명사로도 사용해 왔다. 인터넷상에서는 얼마 전부터 ‘님아’나 ‘님들아’가 2인칭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계명구락부의 ‘당신’ 쓰기 운동은 실패했지만, 이번의 ‘님’ 쓰기 운동은 성공했으면 좋겠다. 50년 넘게 한국어를 쓰며 살았으면서도 거리에서 누군가에게 길을 물을 때마다 “저기요… 저”라고 뇌까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속히 벗어나고 싶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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