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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부모의 종교이다. 마이클 아이건이 <독이 든 양분>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아이가 종교가 되었을 때 부모 역할이란 거룩한 아이를 돌보고 숭배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상이 된 아이들은 기적을 행해야 한다. 부모는 기적을 기다리는 삶을 살면서, 본인의 해결되지 않은 전능감까지 동원한다. 그 맛으로 부모들은 모든 것을 자녀라는 제단에 바치면서 살아간다. 아이를 누군가가 혹은 세상이 건드린다고 하는 것은 종교를, 제단을 농락한 일이다. 

이런 병적인 과정이 진행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일본에서 10년 전 거론되었던 ‘괴물부모’였다. 이 괴물부모들은 신적인 내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고, 또 내 아이만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아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종교인 아이를 잘 지키기 위해 더 강한 괴물부모가 되어야 했다. 사회도, 학교도 심지어는 같이 사는 배우자조차도 내 아이를 지켜주지 않기에 본인은 더 강력한 몬스터가 되어야 했다. 이 괴물부모의 출현에 대해 가타다 다마니라는 정신과 의사는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이라는 저출산 사회의 영향과 ‘그 누구도 나와 연대해주지 않는다’는 무연사회의 고립감, 또 ‘세상은 힘있는 자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불공평 사회로부터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다. 종교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변모할까? 아이는 부모라는 신도를 만족시키고 숭배에 대한 대가를 보여주기 위한 압박 속에 살아야 한다. 살아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열심히 모든 것을 바치는 부모들을 계속 보아야 한다. 부모들은 복창한다. 내가 사는 이유는 오직 자식 때문이고, 바로 너 때문에 산다고. 아이들은 자신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말을 문자 그대로 확인받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가 사는 것 같지 않다. 내 안에 누가 들어있는 삶을 산다.  이소베 우시오가 인용한 대로 ‘모자일체화’의 삶을 산다. 그래서 죽지도 못한다. 내가 죽으면 부모도 함께 죽기 때문에. 그러므로 무기력한 채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 넘쳐나기 시작했다는 무기력한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잉태되고 출산된다.

더 큰 문제는 이 아이들이 아이 상태에서 고착되고 더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국 어른이 된다는 사실이다.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부모의 종교를 부수고, 괴물부모가 지키고 섰던 ‘공부국가’를 탈출하고 난 뒤의 문제다. 그들의 가장 큰 상처는 부모였다. 부모와의 힘들었던 삶을 통해 두 가지가 모두 다 싫다. 본인 자신이 부모라는 신도가 되는 것도 싫고, 자식이라는 종교에 빠지는 것도 싫다. 그러므로 아이는 사양하고 싶다. 나를 종교로 한 가족으로부터 탈출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변치 않는 만성적이고 일상적인 부모의 기대는 여전히 뿌리 깊은 죄책감에 불이 들어오게 한다. 그 아픔은 본질적으로 크다. 물론 이런 부모와의 관계 모두가 개개인 부모의 탓은 아니다. 자녀를 우상숭배화하는 괴물부모의 탄생에는 당연히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 생존에 대한 두려움, 내 삶을 살지 못하는 깊은 사회적 전통, 신뢰에 기반을 둔 공동체 가족의 해체가 있다. “부모에게는 자식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삶도 중요하다”는 문장은 생각보다 실천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이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 이즈음이면 예전엔 묻지도, 보지도 않던 뉴스 중 하나가 큰 전광판에 걸리듯이 전달된다. 바로 신생아 출산 수이다. 통계청의 예측 추정치에 의하면 올해의 신생아 출산 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상반기 출산아 수는 20만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40만명대에서 30만명대로 감소하는 첫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문제 연구소 콜먼 교수는 이대로 가면 한국이 지구상에서 첫 번째로 소멸된다고 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와 그에 대한 대책은 사회정책이기도 하지만 심리정책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자식을 일찍 마음속에서 버리자!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게 하자, 사회가 키워라, 우리 인생을 살자”라는 구호가 아이들에게 자유를 안겨주고, 사회에는 출산의 기쁨을 되찾아 줄지도 모른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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