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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 고려대 명예교수



북한의 전쟁 위협은 거의 다른 문제를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을 정도로 우리를 압박한다. 그러나 답변은 간단히 발견되지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화제를 돌려, 국내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과제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빈부 격차 문제이다. 이것은 상황이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심정에 절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과제가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거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이 문제는 급히 해결돼야 할 사안으로 크게 논해졌었다. 빈부 격차 또는 빈곤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격차가 심한 사회는 하나의 사회로서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다. 


최근 조선일보 주최의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가 내건 주제에도 보다 균등한 부의 문제가 들어 있다. 발언자들 대부분이 세계적인 부유층의 인사 또는 금융업계의 대표자들이지만, 금융 혜택을 부유층으로부터 보다 널리 확대해서 사회적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발언이 많이 나왔다.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3월13일에 새로 선출된 로마 교황도 여러 가지로 빈부의 문제를 인류 전체가 풀어야 할 긴급한 과제라는 것을 취임의 중심적인 상징으로 부상하게 하였다.


교황은 그 전부터 빈곤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교황 선출과 관련된 보도에는, 2007년에 열린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에서, 그가 “재화의 불공평한 분배가 최악의 사회 상황을 만들어,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그것은 많은 우리 형제들에게 보다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한 것이 전해졌다. 


그는 교황으로서의 첫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설교를 잘하는 것보다도 보통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활절 주일이 시작되는 성목요일인 지난 27일에 그는 로마 교외의 소년 교도소에 가서 수감 소년들의 발을 씻는 행사를 했다. 교황청에서 행하던 행사를 현실 세계에 가깝게 옮긴 것이다. 그는 설교에서 목자들이 괴롭고 피흘리고 눈이 멀고 악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변방으로 갈 것을 호소했다.


그의 검소한 생활 습관도 여러 가지로 보도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로 있으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고 교구 내의 작은 아파트에 거주한다거나 해외여행 시 비행기의 일반석을 탄다거나 하는 것들도 널리 이야기되었다. (교황 선출 이후 로마행 비행기의 왕복표 처리를 고민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것은 그의 선출이 가문 또는 개인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교황 피선 후 그는 제공된 승용차를 사양하고 공용버스로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 물건들을 정리했고 스스로 숙박비를 지불하고 숙소의 직원들에게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는 교황으로서도 사도궁전 외의 숙소에서 살며 다른 성직자들과 식사를 함께할 것이라고 한다.


그의 생활양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거주지 근처의 신문 판매소 주인과 관계되는 일화이다. 그는 교황에 선출된 후 판매소 주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신문 배달을 중지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배달된 신문을 묶었던 고무줄을 모았다가 한 달에 한 번 판매소에 찾아가 그것을 돌려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일요일에는 직접 판매소에 와서 신문을 사고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병자들이나 수감자들에게 차 대접을 하러 갔다.


새 교황의 자세는 베르골리오 대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선택한 프란치스코라는 칭호에 집약하여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성자인 성(聖)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선택한 것은 그가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기본 사명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말한다.


교황 프란치스코 선출 (경향DB)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빈곤의 문제를 단순히 빈부 격차나 평등한 분배의 문제와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하는 성자이다. 그의 관점에서, 빈곤은 극복되어야 할 부정적인 삶의 조건이 아니라 적극적인 내용을 갖는다. 다른 수도단체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프란치스코회는 입회 시에 가난의 서약을 특히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탐욕을 없애려면 가난해야 한다. 가난은 필요한 삶의 자료들을 이웃 형제들과 나누는 데에, 그리고 정신적인 추구의 정진에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면서 또 그것은 금욕의 요구 이상의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그 사치와 향락의 삶을 버리고 가난을 택하여 그에 따른 많은 괴로움과 아픔을 겪은 사람이지만, 그의 삶을 금욕과 고행의 삶이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그는 꽃과 바람과 물을 사랑하고, 새들과 물고기에 설교하고, 해를 형제, 달을 자매라고 불렀다. 불도 형제였다. 자연물과의 소통은 그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다. 그에게는 ‘완전한 행복’이 중요했고, 그것은 가난과 괴로움 속에서 행하는 봉사로써 얻어졌다. 그러나 고난의 봉사를 자신의 긍지로 삼자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겸허였다. 그것 없이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에 열릴 수가 없다. 그리고 참다운 사랑과 평화도 있을 수가 없다.


가난에 대한 이런 생각은 릴케의 초기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다. 릴케에게 가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과 세계에 열리게 하고 자신의 내면의 깊이에 이어주는 매개자이다. 그의 흥미로운 관찰의 하나는 오늘날 사람들이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단지 돈이 없는 것이 가난이 아니다. 


물론 돈과 거짓이 판을 치는 현대의 도시에서 가난한 자는 쓰레기 속에 버려진 천 조각, 깨진 그릇 조각과 같아 ‘의지도 세계도 없는’ 존재이다. 도시의 삶은 모든 것을 그 안으로 빨아들이고 동물들을 찢어발기고 사람들을 불꽃 속에 탕진한다. 릴케의 가난의 시는 이에 대조되는 삶의 전형으로서 성 프란치스코를 찬양하는 것으로 끝난다.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통하여 소유와 시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친절과 사랑의 인간이 되고 경의와 기쁨과 지구의 아름다움에 열린 사람이 되었다. 그는 들판을 가며 형제가 된 꽃들과 말을 나누었다.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서 기쁨을 얻었다.


그의 한없는 기쁜 마음은 아무리 작은 것도 놓치지 아니하였다. 그의 노래는 잊혀진 기억을 되돌아오게 하고 사람의 방에 평온을 가져 왔다. 그는 순결을 맹서한 수녀들의 마음을 샀고 그가 뿌린 씨앗은 자연 만물을 풍성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무명의 인간의 죽음처럼 가벼웠다. 릴케의 프란치스코 예찬은 이러한 한탄으로 끝난다--지금 이 ‘맑은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가난한 사람은 이 ‘기뻐하는 자, 청춘의 힘에 넘치는 자’의 존재를 느끼지 않는 것인가? 어찌하여 이 ‘가난의 거대한 저녁별’은 뜨지 않는가? 프란치스코의 전설들을 담은 책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꽃들>이 이름 지은 바대로, 릴케가 예찬한 가난도 ‘성스러운 가난’이었다.


그러나 가난을 넘어서 부를 얻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다. 최소한의 부는 생존의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부를 향한 욕망은 급기야 사회 안에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격화하고 욕망들의 갈등, 정의의 투쟁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대하여 성스러운 가난의 이야기는, 빈부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있고 거기에 모든 존재를 돌보는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음을 말한다. 양분된 세계에서 싸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궁극적인 평화는 존재의 깊이에 흐르는 정신적 맑음의 원천에 이어짐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성스러운 가난의 우화가 전하는 것은 멀리에서 다가오는 이러한 예감이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가난은 궁핍이 아니라 어렵게 얻어내야 하는 과실이다. 그것이 사람을 이 열린 세계로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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