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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 이화여대 석좌교수


 

우리 언론에도 보도된 일이 있는,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만하다. 외국 언론들에 보도된 것을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의 검소한 삶이다. 그는 대통령 궁에 사는 것을 거절하고 수도 몬테비데오 근처의 허름한 농장에 산다. 경호를 맡고 있는 것은 경관 두 명과 다리 하나를 잃어버려 세 발로 다니는 개 한 마리이다. 대통령의 월급은 우리 돈으로 1200만원을 조금 넘어 가지만, 생활비로 80만원을 제한 다음(이것이 우루과이의 평균 소득이다) 남은 돈은 자선사업에 기부한다. 법의 요구대로 공개된 재산은 원래 낡은 폭스바겐 한 대였으나 지금은 부인 소유 농장의 반을 함께 신고하여 2억2000만원 정도가 된다. 단임제이기 때문에 2014년에는 은퇴하게 되는데, 은퇴 후에는 연금을 받게 된다. 따라서 퇴임 후에도 생활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농장에서 채소와 꽃을 재배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은 그는 채식주의자다. 스스로 설명하여, “들고양이였는데 채식주의자로 변모했다”고 말한다. 독재 정부에 대항하는 게릴라 조직의 일원이었던 과거를 생각하여 자신의 평화주의를 스스로 다짐하기 위한 결정이 아닌가 한다.


우루과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좌파 반군 지도자 출신인 호세 무히카 후보 (경향신문DB)


정치 모토의 하나가 ‘깨끗한 정부’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하나의 모토인 ‘일급국가 건설’은 그의 성향으로 보아 조금 해설을 요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검소한 삶은 그의 정치적 신조 그리고 도덕적 결단에 관계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는 스스로 설명하기를 익숙해 왔던 인생이 그런 것이고 그것은 자유로운 의사로 선택한 것이라 한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세계의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자기는 전혀 가난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정말 가난한 사람은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느라고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UN 지속가능한 경제발전회의’에서는 대중 빈곤 해결의 주제 자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다. 대중 빈곤을 없앤다는 계획은 지구 환경이 견뎌내지 못할 것이고, 물질적 추구에 쫓기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무히카 대통령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로 우리 상황을 생각하는 것이 되겠는데,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와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우선 우루과이의 사회적 환경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중에도 인구가 350만명이 안된다는 것은 가장 큰 차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할 성싶은 것만 생각하여도, 부럽게 여겨지는 것이 없을 수는 없다. 무히카 대통령이 그렇게 돈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것은 우루과이에서는 돈이 없는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와 돈의 연결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제일 부러운 것은 청렴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정치가의 요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높았던 그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한 것은 경제 등 현안 문제들을 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덕성에 못지않게 정치에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능력이다.


우리 형편과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그가 인간으로 하나의 분명한 모델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의 삶이 정치 신조나 자선행위 때문에만 전범(典範)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성인이나 성군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하여 그 나름으로 건전한 판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가 사는 소박한 삶은 보통 사람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이다. 특히 연금제도가 확실하다면 그렇다. 무히카 대통령의 소박한 선택도 퇴직 후의 연금 때문에 안정성을 얻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그는 뚜렷한 전범적(典範的)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퇴임 대통령이 받는 연금 혜택은 우루과이 복지 제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복지 문제를 생각해보면 그 대조가 흥미로울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우리 대통령 후보들의 주요 정책 제안에도 복지가 들어 있다. 보다 구체안의 제시가 요구되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것이 당 소속에 관계없이 의제가 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히카 대통령의 리우 UN 회의 연설에는 대중으로 하여금 무조건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 들어 있다. 소비주의의 삶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빈곤에 대한 소비주의적 대책은 해답이 아니라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의 철학에 빈곤 대책--적절한 한계를 갖는 대책이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것은 그의 정치 철학의 핵심의 하나다. 그는 대통령 관저를 노숙자 숙소로 개방하겠다고 한 일이 있다. (물론 결국 정부는 다른 조처로서 관저의 개방을 대신하였다.)


우리의 복지 논쟁을 움직이고 있는 인간 철학은 무엇일까? 경제 발전과 그에 따른 부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불안이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협한다면, 그것은 방치될 수 없는 일이다. 벌어지는 빈부 차는 사회 질서의 기초를 무너지게 한다. 이것은 어느 관점에서나 긴급한 조처를 요구한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에게 빈곤의 문제는 물질적 부의 분배 문제로 환원된다. 거기에서 인간의 도덕적 의무의 문제는 별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대통령 선거에 분배나 복지에 대한 제안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형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표를 위하여 필요하다. 그 외에도 정치적 타산은 정책 제안들을 날로 불려 간다. 무히카 대통령에게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은 원칙과 이상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이런 모호한 상태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후보자를 가리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한다. 그러나 정책을 선택하면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가 정치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여러 인간적인 의미에서도 지도자일 것을 바란다. 금년 초에 독일에서 전임 대통령이 물러가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때 이 칼럼에서도 그 사정을 소개한 바 있지만, 전임 대통령이 퇴임해야 했던 것은 약간의 불투명한 행적 때문이었다. 여러 당의 지도자 그리고 국민 여론이 강조한 것은 퇴임하게 된 불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의 도덕적 위엄을 손상했다는 것이었다. 여야 좌우 합의 위에 당선된 가우크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구체적인 정책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정치 원리--자유, 정의, 불우한 자에 대한 배려, 도덕적 책임 등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원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독일이 민족 공동체라기보다는 가치 공동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옛날 우리 대통령 선거에 등장했던 말을 빌려, 가우크 대통령의 의무는 ‘정신적인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통령과 총리의 이원 체제로 하여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 정치 문제는 총리의 책임이다. 대통령 선거는 그 목적을 위하여 선출된 연방회의에서 행해진다. 그것은 후보자를 정신적 전범의 관점에 집중하여 평가할 수 있게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한정되는 공공 공간은 후보자를 보다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우루과이의 대통령 선거가 직접선거인 것을 보면, 중요한 것은 제도에 못지않게 사회 전체의 정신 풍토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국민 정서의 여러 증거로 보아 독일은 대통령직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판정하고 그것을 투표에 반영할 수 있는 정신 기율을 가진 사회로 보인다. 가우크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독일을 가치 공동체라고 한 것은 희망이면서 현실일 것이다.


정신 풍토, 제도, 어느 쪽 때문이든지, 우리 사회는 지금 ‘정신적 대통령’을 선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대중 영합적인 모든 수단--흑색선전, 막말, 흥미를 끄는 연출 등을 동원하여 표를 모으는 데에만 힘이 집중되는 것이 우리 선거다, 이러한 것들을 넘어 후보들의 정신 자세, 인간 이해, 도덕적 윤리적 원칙들을 짐작해내기는 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것을 모르고 정책들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할지 모른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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