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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3년생이다. 1963년은 제3공화국이 시작된 해이고, 5·16쿠데타로부터 2년이 지난 뒤이기도 하다. 1979년 10월까지 17년 가까이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박정희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골목길에서 고무줄놀이를 할 때 부르던 노래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고마우신 우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오리다.”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러한 가사의 노래를 지금 그 멜로디까지 기억한다. 고무줄 쥐여주면 그때 그 자세 그대로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라. 1960년대 혹은 1970년대 초반, 서울의 가난한 골목길에서 ‘고마우신 우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을 노래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풍경을.

그 아이가 조금 더 커서 학교에 가면, 이제 국민교육헌장을 외운다. 그건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였고, 상벌도 따르는 일이었다.

너무 길었던 국민교육헌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느라 무진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반에서 1등을 했던 학생은 그걸 피아노까지 쳐가며 노래로 외웠다. 피아노를 배울 수 있던 학생이 드문 시절이었다.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노랫가락까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중고생연대’ 소속 회원 등 10대 청소년들이 서울 보신각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정지윤 기자

그리고 그 아이는 더 커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다. 그리고 10·26을 맞이한다. 평생 동안 유지돼왔던 세계가 깨지는 순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알았던, 믿었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의 끝. 박 대통령이 죽고 이튿날 한 여고 교실의 풍경을 묘사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 여교사가 말한 후 통곡을 하기 시작하고, 학생들이 같이 오열하기 시작한다.

물론 개중에는 교과서 이외의 것을 알고, 신문이나 TV뉴스에서 보도하는 것 이상의 일들을 알고 있는 학생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교과서가 알려주는 것만 알았고, 교사들이 가르쳐주는 것만 알았다. 그 이외의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것을 알고, 그 독재자를 물리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지 알고, 그게 문학적인 묘사가 아니라 실제의 피이자 실제의 목숨이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피 흘리는지도 알지 못한 채 독재의 치하에서 압사당할 지경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건 가난한 노동자이면서 서민인 한 사람의 딸로 태어난 나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또 피를 흘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모든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순간, 얼마나 놀라웠겠는가. 얼마나 부끄러웠겠는가. 얼마나 끔찍했겠는가. 그것이 바로 나의 1980년대였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염소의 축제>는 라틴아메리카의 한 나라인 도미니카에 실재했던 독재자, 트루히요 암살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은 낯선 나라의 낯선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나는 도미니카가 어딘지도 몰랐다. 낯선 인물들, 낯선 상황들, 낯선 묘사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가슴을 찌른다. 울컥 울음이 터질 것 같다. 독재라는 것의 의미, 독재가 남긴 칼자국 같은 상처들, 그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 좌절, 슬픔…. 그 모든 이야기는 공간을 넘어, 시간을 넘어 결국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나는 박정희를 잊지 않았고, 그가 기대했던 대로,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그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윤흥길의 <완장>은 어떤가. 고작 저수지의 관리원에 불과한 주인공은 완장 하나를 얻은 후에 세상 전체가 자신의 지배 아래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주인공에게 완장은 저수지가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이 해학적인 소설은, 사실, 이 주인공이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지점에서 갑자기 슬픔으로 빠지게 된다. 작은 완장의 삶은 그보다 더 큰 완장에게 지배되는 삶이다. 완장은 완장을 지배하고, 가르친다. 그런 세계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건 곧 피를 흘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독재치하의 세계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박정희의 세계였다.

그 세계가 빛나는 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야만 자신의 현재가 안전해지는 사람들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옛날처럼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리거나 감옥에 보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이므로, 은밀히 교묘히 처리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터인데, 그것 역시 결국에는 폭력이다. 비선이 난무하고, 천문학적인 비자금이 조성되고, 선전과 조작이 이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 기꺼이 엎드린다.

국정교과서가 드디어 발표됐다. 지금까지 분석된 내용을 보면 ‘고마우신 우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식의 고무줄놀이 찬가 같은 것이 교과서의 핵심 내용이고, 그것이 가장 큰 특징인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그런 사실을 문자 낭비하면서까지 반복하는 이유는, 박정희의 딸이 아닌 박근혜는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한때나마 지지자였던 사람들은 정치인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지지했다. 권력의 편에 선 국정교과서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다.

요즘의 학생들은 예전의 나처럼 순진할 리 없다. 국정교과서라는 게 뭔지 벌써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교과서로 시험을 보고, 분노를 하고, 실망을 하고, 좌절을 할 학생들을 생각하면 어느새 어른으로서 미안해진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여론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이 여론은 촛불 정국의 영향에 도움 받은 바 없지 않을 것인데, 그 수많은 촛불 중의 아주 많은 수가 청소년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미안하다가, 부끄럽다가, 뿌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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