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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더 진한 물도 있더라.” 2014년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최순실씨를 가리켜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왜 박 대통령이 40년 동안 친동생들마저 외면하고 최씨에게 그토록 집착했는가일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 생살은 피가 나도 도려낼 수 있지만, 오장육부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는 말도 박 대통령과 최씨가 피보다 더 진한 관계였음을 잘 보여준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피를 나눈 혈연관계는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친구관계보다 본래 더 끈끈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그렇다. 일반적으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의 잘못된 40년 우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명제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특히 독자가 젊은이라면 더 의아해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친동기보다는 단짝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 친밀감을 느끼곤 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방 청소를 도와주거나 용돈을 꿔주는 등의 소소한 도움을 베풀 의향도 그 상대가 친동기가 아니라 절친이면 더 높아진다. “내 자식, 애지중지 키워 놓았더니 매일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정신이 없네”라며 섭섭해하는 부모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내가 느끼는 정서적인 친밀감만 따지면, 한집에서 티격태격한 친동기보다는 차라리 긴 세월 사귄 단짝 친구가 종종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러나, 진화생물학의 시각에서 보면 친밀감이 상대방을 돕게 하는 유일한 요인인 것은 아니다. 왜 혈연에게 도움을 주는가? ‘갑돌이’의 몸속에 있으면서 ‘을돌이’를 돕게 만드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이해를 돕기 위한 은유일 뿐이다. 유전자가 정말로 의도와 동기를 지닌다는 뜻은 아니다). 을돌이가 갑돌이의 혈연이라면, 을돌이의 몸속에도 이 유전자의 복제본이 들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을돌이가 얻는 이득이 갑돌이가 입는 손해보다 넉넉히 크다면, 이 유전자는 갑돌이로 하여금 을돌이를 돕게 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복제본을 남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갑돌이는 을돌이로부터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가 맛있게 밥 먹는 모습만 보아도 부모는 절로 배가 부르듯이, 피붙이를 돕는 인류의 적인 행동양식은 그 자체로서 자연 선택된 것이다.

단짝 친구를 돕는 진화적 이유는 따로 있다. 동성의 또래와 어울리고 끈끈한 우정을 나누려는 심리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거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운에 대비하거나, 다른 집단과의 갈등에 대처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화했다. 특히 수렵·채집생활을 했던 진화적 과거에는 보험회사가 없었음을 고려하면, 예기치 못한 불행에 대한 일종의 보험으로서 믿음직한 절친들을 미리 만들어두는 일이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즉, 가까운 친구 사이에는 하나를 받으면 반드시 하나를 갚아야 하는 엄격한 상호성의 원리가 적용되지는 않지만(“괜찮다.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우리는 어쨌든 미래에도 변치 않을 의리를 기대하면서 절친을 돕는다. 한 번 의리를 지킨 친구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면서 점차 우정이 강화된다. 요컨대, 친구를 도울 때 우리는 마치 앞으로 돌아올 보상을 바라는 것처럼 행동한다.

가족애는 무조건적인 헌신이다. 우정은 조건적인 협력이다. 피붙이만이 누리는 이러한 ‘특혜’는 최근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첫 번째, 정서적인 친밀감의 효과를 통계적으로 제거했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절친보다는 혈연을 더 챙긴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두 명의 상대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이 똑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피붙이를 절친보다 더 돕고자 했다. 두 번째, 불타는 건물에 뛰어들어 상대를 구조하거나, 콩팥 하나를 떼어주는 등의 커다란 도움을 베풀 의향은 그 상대가 절친이 아니라 친동기일 때 더 높았다. 이처럼 큰 도움은 그 속성상 상대방이 은혜를 갚아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세 번째, 한 연구에서 실험 참여자들에게 두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혼자서 150달러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자신과 자신의 절친이 똑같이 75달러씩 가질 것인가? 대다수 참여자는 150달러를 독차지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75달러의 수혜자가 친동기라면, 대다수 참여자는 자신과 친동기가 75달러씩 나누어 갖겠다고 답했다.

언제나, 예외 없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키가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웬만한 남성보다 키 큰 여성도 얼마든지 있다. 요는 혈연관계와 친구관계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이다. 우정은 아주 단단할 수 있지만, 의외로 쉽게 끊어진다. 연락이 두절되거나 의리를 저버린다면 친구는 도로 남이 된다. 요즘 박 대통령이 최씨의 비행을 전혀 몰랐다는 식의 발언을 흘리고 있다. 두 사람도 ‘피보다 더 진한’ 사이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서로를 배신하는 공동정범이 되었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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