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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떴다. 그동안 참 오래도 감췄다. 숨기고 거짓으로 덮고. 그러나 끝내 드러났다. 그림자가 확실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그림자가 진짜인지, 실체가 그림자인지 구분이 안된다. 그러면서 그림자는 자기와 상관없다는 말만 되뇐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고작 그림자에 불과했음을. 처음부터 그림자에 불과했는데, 그걸 이용해 자기 이익을 추구한 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그게 이제야 드러났을 뿐이다.

문장은 흔히 그 사람을 드러낸다. 문장의 길이와 깊이는 사고의 그것들과 일치한다. 그녀의 문장은 독해가 되지 않았다. 번역기가 출현했다. 대통령의 문장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국어 교육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반면교사였다. 긴 문장은 구사하지 못했다. 아니 긴 문장은 사용했지만 거의 비문이었다. 그러니 주어가 없는 짧은 문장만 나열했다. 적어놓은 걸 읽지 않으면 3분 이상 발언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미리 적어둔 게 없이 3분 이상 발언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기껏 기자회견을 해도 질문을 받지 않는다. 무슨 망신을 자초할 일이 있겠는가.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호응했다. 질문도 없이 받아쓰기만 하러 거기 들락거렸던 셈이다. 결국 기자들도 그림자놀이에 나쁜 조역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문장 하나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데 놀랍게도 권력의지는 강하다. 그게 올바른 권력의지가 아닌 게 문제지만. 온 나라가 뒤집혔는데도 달랑 몇 줄 읽고는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했다. 그나마 그 내용도 참담했다. ‘선의’로 한 것이었다는 변명뿐. 시민들은 분노했고 광장에 모여 성토했다. 마지못해 2차 담화를 내놨다. 자신은 무관하다는 주장뿐.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말은 곁들였지만. 그나마도 금세 뒤집었다. 더 많은 촛불이 모였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말에 시민들은 LED촛불을 ‘창조’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자 3차 담화를 내놨다. 그런데 내용이 아리송했다. 누구 말마따나 결코 스스로 내려올 사람이 아님을 보였다. 문장 하나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데 정치 공작에는 가히 천재적이다. 하기야 평생을 그런 것만 보고 살았으니.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시민의 삶을 산 적이 없으니 시민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를 학습한 적 없으니 민주적 사고가 없다. 오로지 권력을 쥐고 흔드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그나마 알고 보니 그림자에 불과했다. 실체는 뒤에 숨어 모든 국정을 농단했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것과 상관이 없단다. 아무래도 ‘혼이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이미 자격을 상실한 대통령이 던진 한 수가 정치판을 뒤흔든다. 온갖 셈이 난무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림자가 던진 술수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존재는 이미 의미를 상실했다. 국민들은 마음에서 지워냈다. 유불리의 셈에 능한 정치꾼은 바쁘겠지만 장고 끝에 악수일 것이다. 꾀를 내보지만 죽을 꾀다. 여전히 종북좌파의 지령에 의한 촛불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고 싶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참담하고 부끄러워서 숨이나 쉬겠는가.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 그런 입 다물어야 한다. 이만큼 망쳤으면 족하다. 그런 자들이 홍위병 노릇 하며 그림자를 감췄다.

이 상황에 가장 큰 피해자(?)는 철도파업 노동자들이다. 긴 파업 투쟁이 박근혜 게이트에 완전히 묻혔다. 그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알려질 틈조차 없다. 그 원인의 근본적 제공자는 학자일 때의 신념을 완전히 뒤집어 사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최고위원까지 되었다. 곡학아세의 표본이다. 뻔뻔함의 극치다. 그 변절의 값을 애먼 철도노동자들이 온몸으로 치른다.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는 악한 사회다. 그들을 겁박하고 착취하는 정치는 악당 정치다. 그런 구조의 모순을 가장 잘 이용하는 집단이 있다. 권력은 바뀌어도 돈의 위력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패거리다. 최순실의 농간에 놀아나 청와대의 압력으로 돈을 강탈당한 것으로 코스프레한다. 웃기는 일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으니 넙죽 돈을 바친 것일 뿐이다.

그게 그들이 살아나는 방식이다. 경영 합리화와 노동생산성 제고 등은 외면한 재벌들이다. 권력에 기생하고 걸핏하면 대량해고로 고정비를 줄이는 방식을 서슴없이 썼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공적기금으로 수혈되며 오히려 혜택을 받아 성장했다. 구조조정으로 하부구조는 망가뜨려놓고 정작 자신들의 구조조정은 외면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러니 정작 세계 시장에서 전투력은 약화되었다. 이익은 정경유착으로 취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을 뿐, 그들은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그림자놀이를 즐겼다. 몽땅 도둑놈들만 득시글대며 ‘1% 놀이’에 빠졌다. 시민들만 등골이 빠졌다.

그림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듣지도 못한다. 실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닐 뿐이다. 그걸 섬기고 따른 시민들은 바보가 되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고 불의가 정의를 패대기쳐도 지지한 사람들이다. 이제라도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만큼 속이고 망가뜨렸으면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러나 그림자는 여전히 자기 말만 지껄인다. 늘 국가만 생각했단다. 사익을 취한 게 없단다. 심지어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고개를 세운다. 차라리 그림자답게 입을 다무는 게 나을 듯하다. 아무리 그림자를 떼어놓으려 해도 질기게 따라붙는다.

어느 정치인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섹시한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주말이 있는 삶’조차 반납했다. 촛불을 들고 외치러 간다.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그림자는 귀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외친다. 모든 그림자를 지워내기 위해. 단 한 사람의 퇴진만을 위해 주말을 포기한 게 아니다. 악의 뿌리를 도려내기 위함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부역자들과 그림자 뒤에 숨은 또 다른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함이다. ‘이게 나라냐?’고 외치는 건 ‘제대로 된 나라’를 다음 세대에 넘겨야 할 의무 때문이다. 이제 혁명은 당위다. 그림자는 끈질기게 버틸 것이다. 그게 주특기니까. 그러나 그녀의 바람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헌법을 유린한 자들이 ‘법적 절차에 따른 명예로운 퇴진’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자퇴’와 ‘퇴학’ 중 선택하랬더니 ‘조기졸업’을 요구하는 셈이라는 소셜미디어의 댓글이 딱이다. 어느 개념 여배우의 말이 맵다. “질서 없고 불명예스럽고 빠른 퇴진을 원합니다!” 깨끗하게 물러날 일이다. 못된 그림자들과 함께.

대통령이 공약 하나는 분명히 지켰다. ‘국민대통합’이라는.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온전하게 해가 뜰 때까지. 그림자놀이는 끝났다. 막장 사기극도 끝났다. 나라를 말아먹을 만큼 거덜 냈으면 그만 내려와야 한다. 시민들에게 이제 주말을 돌려줘야 한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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