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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오전 서울역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토요일인 지난 11일, 사전투표 이틀째 날에 투표를 하고 왔다. 우리 동네 투표소 가는 길이 마침 산책로와 이어져 있어서 모처럼 벚꽃길도 걸었다. 꽃이 활짝 핀 벚나무 아래 꽃잎들이 잔뜩 떨어져 있어 그야말로 꽃길을 걸었다.

도심에서 떨어져 사는 덕분에 근방에 꽃을 보면서 걸어다닐 길이 많다. 봄이면 산책이 즐겁곤 했다. 물론 올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꽃놀이는 고사하고 천천히 걸어다닌 기억조차 없으니 말이다. 집 밖을 나서면 빨리빨리 볼일을 보고, 또 빨리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꼭 필요한 일 때문에 한 외출이었음에도 그냥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눈치가 보였다. 올봄, 거의 모든 집안의 풍경,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었겠다. 

그래도 꽃들이 피는 건 집 안에서도 보였다. 길 쪽으로 난 창으로는 벚꽃이 보이고 단지 안쪽으로 난 창문으로는 목련이 보였다. 목련은 벚꽃보다 개화가 느렸다. 매일 봐도 매일 꽃잎을 다물고 있는 것 같은데, 또 어느 틈엔가 아주 살짝 피어 있기도 했다. 저를 쳐다보는 사람 애를 태우는 듯한 개화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아 자꾸 내다보게 된다. 그런 게 꽃이고 그런 게 봄일 터이다.

투표소 가는 길에 활짝 핀 꽃을 보니 모처럼 마음이 환하다. 외출하는 게 일종의 잘못이 되어버린 봄을 보내는 동안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 모든 일들이 빨리 끝나는 것뿐이었을 터이다. 꽃 다 피는 동안에도 ‘이 모든 일’은 끝나지 않았으나, 투표를 하는 날은 왔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본 것도 오랜만이다. 내가 사는 동네의 사전투표소는 건물 4층에 있었는데, 1층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1m 거리 간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투표를 하러 오고, 또 오고 있었다. 

그날 아침, 지인으로부터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일찍 사전투표를 하고 왔다면서 인증샷을 보내온 건데, 이건 뭐, 방역요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중무장을 한 모습이었다. 투표를 하러 가는 길이 이렇게 비장하구나 싶으면서도 또 이렇게까지 비장하게 투표를 해야 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싶기도 했다. 


환한 벚꽃길 걸어서 투표소로

나랏일 얼마나 중한지 알기에

한 표 행사 위해 과감히 외출

아주 잘 뽑아야겠단 마음으로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하시길


나랏일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기 때문일 터이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으면, 신속하게 나서지 않으면 일이 어떻게 될지를 온몸으로 알아버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다. 신속하게 처리하면, 현명하게 판단하면, 그걸 구조적으로, 유기적으로, 국가적으로 잘하면 일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된 것이겠다. 천재지변이야 어쩌겠는가. 그런 재난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수습하고, 처리하고, 관리하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회가 하는 일이고, 국가가 하는 일이다. 물론 개인도 한다. 

그래서 투표를 하기 위해 과감히 외출을 하는 것이다. 아주 잘 뽑아야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일요일 아침 보도를 보니 올해 사전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고라고 한다. 길거리 유세 소리도 못 들었고, 밖엘 잘 나가지 않으니 플래카드 펄럭이는 것도 못 봤다. 이토록 조용한 선거가 있었나 싶었다. 그러나 투표하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인 것이다. 

꽃 이야기로 시작을 했다. 디지털 꽃놀이라는 새로운 말까지 생겨난 요즘이다. 지자체는 지역에 핀 꽃들을 드론으로 촬영해서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세계적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아이패드로 그린 꽃그림을 언론에 제공했다. 예전에는 직접 가야만 즐길 수 있던 문화 콘텐츠들이 마치 쏟아지듯이 온라인으로 개방되었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무관중 공연을 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은 공연을 안방에서 보게 해주고, 대중가수들 역시 온라인으로 콘서트를 한다. 이런 일로 인해 앞으로 공연장을 직접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동시에 오히려 이런 기회를 통해 새로운 관객층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큰 모양이다. 아마도 후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오페라를 침대에 누워 스크린으로 보는 동안, 나는 빨리 공연장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싶은 마음으로 안달이 날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혼자 치는 박수처럼 멋쩍은 것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사태가 끝난 후, 우리가 떠안아야 할 부정적인 결과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혐오와 차별의 확산을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겪었다. 게다가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 아무것도 다 끝나지는 않았다. 그러니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하러 가시기를 바란다. 4월15일이다. 투표하는 마음이 뜨거운 만큼 투표소가 많이 붐빈다. 안전수칙도 잘 지키시기를 바란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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