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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어떤 꿈들을 꾸셨는지. 좋은 꿈을 꾸고 나면 복권 당첨보다도 더 근사한 일이 있기를 바라는 분들도 많을 텐데, 가족의 건강, 좋은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 꿈꾸고 있던 것들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소망이 그러할 것이다. 물론 큰돈도 생기고, 바라던 소망도 이루어지게 하는 꿈을 꾼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꿈이라는 말이 소망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니 좋은 꿈을 꾼다는 말이 바로 소망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꿈이 크다는 말은 미래에 대한 포부를 말하고, 꿈도 크다는 말은 헛되게 품는 몽상을 말한다. 조사 하나에 따라 꿈의 질이 달라진다. 

꿈을 꾸고 나서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도 있다. 19세기의 화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케쿨레는 꿈속에서 벤젠의 원자구조를 알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연구를 하던 중 선잠에 빠져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뱀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원의 형태로 결합하는 것을 보았고, 그게 바로 벤젠의 원자구조를 밝히는 열쇠였다는 것이다. 그가 꾼 꿈을 뱀꿈이라고 해야 할지, 원자꿈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그 꿈을 통해 그동안 그를 괴롭히던 화학적 난제를 풀었을 뿐만 아니라 화학의 역사를 바꾸었다. 그리고 인류는 새로운 선물을 얻었다. 현대화학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러시아의 과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도 꿈을 꾸고 난 후 원소의 주기율표를 완성했다고 한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그동안 공백을 메울 수 없던 주기율표가 완전한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에게는 원자와 원소가 등장하는 꿈이 황금돼지꿈보다 더 복된 꿈이었으리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이 두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그 후 인류의 역사에도 그렇다. 

꿈이 창작의 영감이 된다는 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과학자들의 꿈과 관련된 위와 같은 일화들은 그야말로 소설처럼 여겨진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교훈을 남긴다. 꿈은 그냥 바란다고 해서 꿔지는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꿈을 꿀 정도로 지독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니 그게 꿈에까지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그토록 정밀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밤에 꾸는 좋은 꿈 역시 그 꿈의 바탕이 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돼지꿈 같은 것은 없는 듯하다. 그렇더라도, 좋은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잠드는 일이 기대에 찰 터이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기는 하겠다. 

꿈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쓴 과학자도 있다.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그 행성들의 운동은 타원형으로 이루어진다는 학설을 최초로 발표해 우리에게 친숙한, 우리에게 새로운 우주를 열어준 요하네스 케플러가 그렇다. 그가 1608년에 쓴 <Somnium>이란 소설은 라틴어로 꿈이라는 뜻이다. 지독한 근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노력으로 하늘을 관측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이 학자는 과학이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 적어도 당시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을 소설로 채웠다. 이 소설은 우주선을 타고 달을 여행하는 내용이다. 비록 우주선이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고, 마술적인 장치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주여행과 달에 관한 어떤 묘사는 실제와 매우 유사하다고 알려져있다. 평생의 연구와 무한한 상상력으로 결합된 이 소설은 역사상 최초의 에스에프 소설로 평가받기도 한다. 케플러는 최초의 초신성을 관측하기도 했다. 2009년에 우주로 발사되었고 지난해에 그 수명을 다한 ‘케플러우주망원경’은 그의 이름을 기린 외계행성 관측용 우주망원경이다. 이 우주망원경은 달보다 더 먼 것들, 태양계보다 더 아득한 것들을 관측했고, 50만개가 넘는 외계항성과 행성들을 발견했다. 

자신만의 꿈이 타인의 악몽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실은 아주 많다. 새해 벽두부터 한 늙은 사람의 흉언을 듣기도 했다. 누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건데, 내가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그 이름은 나의, 우리 모두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역사의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흘린 피와 바친 목숨이 얼마나 많은지. 귀를 씻고, 아예 후벼 파고, 다시 새해를 생각해야겠다.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러면 어떤가. 한달이 지나도 여전히 새해다. 좋은 꿈을 꿀 기회는 아직도 많다. 좋은 꿈을 꾸려고 노력하는 시간과 기회가 부족한 것이, 그 시간과 기회에 내줄 수 있는 마음이 넉넉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일 수는 있겠다. 아무리 좋은 꿈을 꿔도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더 큰 문제겠다. 노력으로 안되는 사회는 자꾸 꿈만 꾸게 한다. 그리고 헛된 꿈은 나쁜 노력과 나쁜 시도를 낳는다.

그래도 새해다. 새해니 악착같이 좋은 꿈을 꿔야겠다. 오늘은 다만 어제보다는 좋은 꿈을 꾸게 해달라는, 거창하지 못해 부끄럽지만, 아니 혹시 많이 거창한가 싶은, 낯간지러운 나의 새해 꿈이다.

<김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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