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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붐비던 시내가 한산하다. 좀 과장하면 유령도시 같다. 하기는 도시의 이 조용한 풍경은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속 편한 소리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이다. 거리 풍경이 이렇게 된 것은, 감염력이 강하고, 치료약이 없고, 치사율이 높다는 메르스라는 유행병의 갑작스러운 확산과 더불어 시민들이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타인들과의 교류·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스스로 ‘자가격리’의 생활로 들어가고 말았다. 소문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출입을 일절 그만두고, 필요한 생활물자도 배달에 의존해서 지낸다고 한다. 혹시 타인의 손이 닿았을지도 모르는 현관문 손잡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알코올로 닦으면서.

인간인 이상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생존·생활이 불가능함에도,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기묘한 상황이 되었다. 옛 예언서가 경고해온 ‘백조일손’(백 명의 조상에 한 명의 자손)의 상황이 도래한 것일까. 말세가 되면, 괴질이 창궐하여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져 결국은 대부분이 죽고, 급기야는 십리에 한 사람의 인간도 만나 보기 어려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끔찍한 예언 말이다. 물론 메르스라는 게 그런 괴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피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결국 세상의 종말, ‘말세’가 아닌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세도, 괴질의 창궐도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메르스라는 유행병의 발생경위나 확산과정을 보더라도 그렇다. 아직 정확한 연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메르스가 중동지방에서 발생하게 된 것은 이 병원체의 숙주라는 낙타가 근년에 이 지역에서 생태적 조건과 상관없이 과도하게 밀집 사육된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까지 메르스의 감염률이나 치사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알려졌는데, 그 주된 이유는 (‘시사IN’ 최근호에 의하면) 그곳 의료기관의 허술한 질병관리시스템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사우디의 부유층은 그들 특유의 ‘폐쇄적인’ 생활방식 때문에 좀처럼 메르스에 걸리지 않고, 주로 서민층,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쉽게 감염된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적으로 가난한 자 혹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는 관념이 희박한 독재국가 혹은 권위주의 국가일수록 질병관리시스템이 허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메르스확산으로 서울 강남지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휴업을 이틀 더 연장하도록 한 11일 반포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에 휴업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출처 : 경향DB)


지금 한국은 발전된 기술사회라고 자처하면서도, 사우디 다음으로 메르스 감염률이 높은 나라가 되면서 세계인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기피를 당하는 불쌍한 처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절망을 느끼는 것은, 이 사태가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이 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위 공직자(들)는 우왕좌왕할 뿐 세월호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초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하고,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다. 뒤늦게 얼굴을 내민 대통령은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미주알고주알 뭔가 지시를 내리고 있지만,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의 그런 쓸데없는 연기(演技)로 이 심각한 재앙이 극복될 수 있다고 정말 믿는 것일까?

전문적인 식견과 역량을 요하는 공중보건문제에 대하여 최고 통치자가 이런저런 세부사항에 관련하여 개입한다는 것은 사실 우스운 일이다. 최고 권력자라고 해서 모든 문제에 정통한 현자인 척 행동하는 것보다 희극적인 장면이 없다. 좋은 통치자는 자신의 권한과 능력의 한계를 잘 이해하고, 화급을 다투는 재앙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그 방법을 지혜롭게 강구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이 방면의 최고 전문가를 선택하여, 그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것일 터이다. 그게 바로 고대 아테네인들이 보여준 방법이었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인류사상 최고의 민주주의를 실현시켰고, 그 민주주의의 핵심기제는 거의 모든 공직자를 제비뽑기로 선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것은 직업적 정치가란 결국은 부패하게 마련이라는 철저한 인식, 모든 시민은 누구든 국가사무를 감당할 능력이 있고, 또 그래야 모두가 자율적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테네인들에게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하는 주체는 ‘엘리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반시민이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예컨대 전쟁을 지휘한다거나 국가의 까다로운 재정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테네에서는 예외적으로 장군이나 재정관은 투표로 선출했고, 일정한 임기 동안 그들에게 절대적 복종을 했다. 그렇게 해야 공동체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최고 권력자가 나선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다. 때로는 적임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가 거리낌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최고 권력자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 즉, 지금 한국 사회가 재난 대응에 계속 실패하는 것은, 현장책임자나 실무자들이 자주적으로 신속히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재량권이 없다는 점과 큰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시사IN’ 기사에 의하면) 실제로 정부는 메르스에 대한 매뉴얼을 이미 작년 말에 작성해놓았다. 그런데 그게 무용지물이 된 것은 오히려 실무자들이 그 매뉴얼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즉, 지난 5월4일 인천공항으로 메르스 감염 환자가 입국했을 때, 그의 출발지가 (메르스 발생국이 아닌) 바레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가 (메르스 발생지역인) 카타르를 경유했다는 사실은 방역실무자들이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발생지역만 나열돼 있는 매뉴얼이었기에.

상관의 지시 없이 실무자들이 자주적으로 판단·행동한다는 것은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실제로 거의 불가능하다. 식민지 지배, 군사독재, 독선적인 정부를 거치는 동안 관료사회든 기업이든 한국인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노예의 삶에 길들여졌다. 그러니까 메르스 사태도 결국 민주주의의 결여로 빚어진 재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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